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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The apocalypse before us -5-

$기


글쓴이: 푸폭

등록일: 2014-06-02 16:12
조회수: 342 / 추천수: 3


추천하신 분들(3명)
Y , Leaf , 소시에
 
“으, 춥다.”

롤렉스는 어깨를 움츠리고선 몸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나 오래 남극에 머물러 있었는데도 이 추위는 전혀 적응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거기엔 적응하고 어쩌고 할 만한 수준의 온도가 아닌 것도 있겠지만 임무가 없는 동안엔 따뜻한 숙소 안에 처박혀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그녀의 평소 행실도 한 몫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손을 비비며 양 팔로 몸을 감싸던 롤렉스는 코트 안주머니를 뒤적뒤적하더니 납작한 휴대용 술병을 꺼냈다. 자연스레 그걸 입에 갖다 대려는 찰나 메터가 그걸 가로챘다.

“뭐야?”
“의뢰 중엔 술은 금지다.”
“그건 너나 지키시고- 야, 야! 지금 뭐하는 건데!”

날카롭게 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콸콸 바닥에 쏟아 붓고 있는 메터를 본 롤렉스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전예방이다.”
“뭔 소리야? 나 지금 진짜 화나려고 하니까 제대로 설명해.”
“오퍼레이션 이스케이프 프롬 헬.”
“아하. 죄송합니다.”

롤렉스가 꺼내들었던 권총을 다시 챙겨 넣었다. 메터의 생각으로는, 어쩌면 그 날 일도 자신의 잘못이었을 지도 몰랐다. 눈앞의 이 녀석이 그 정도로 대책 없는 인간인 걸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잘못. 사실상 의뢰가 거의 완수 상태니 다들 오늘만큼은 긴장 풀고 즐기자는 의견에 메터 자신도 휩쓸린 건지, 이 정도는 괜찮겠다고 생각한 건지, 평소와는 다르게 그런 분위기를 허용했었다. 물론 메터 자신은 마시자 판엔 어울리지 않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일은 그렇게 됐다. 이미 지난 일이야 그렇다 쳐도 앞으로도 같은 골칫덩이로 인해 일을 망치는 건 사양이었다. 한편 오히려 추위를 타지 않는 건지 여느 때와 같이 숄 하나만 두르고선 의젓하니 서있던 케이시는 전화기를 꺼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메터의 눈썹이 가늘게 좁혀졌다.

“뭐해?”
“지인한테 연락하려고요.”

그래도 대책 없는 인간과는 달리 케이시인지라 그냥 지켜본 메터였지만 그녀는 의외로 롤렉스의 물음에 순순히 어이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정말 이 둘과 함께한다는 게 옳은 결정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한순간 메터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남극에서 행하는 모든 통신이 감청된다는 건 기본 상식이다.”

굳이 말로 덧붙이진 않았지만 메터의 말에는 너도 업계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지 않느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하나 그런 말에도 케이시는 메터를 향해 생긋 웃어보이고선 전화기를 귀에 댔다.

“그 정도 대비는 되어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되요. 그런데, 메터 씨는 남극에서만 조심하시나요?”

케이시의 마지막 말에 잠시 생각하던 메터가 갑자기 롤렉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 매서운 시선을 맞이한 롤렉스는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본 메터는 고개를 젓고선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차원의 통로를 발견하기 이전에도 이미 전 세계적인 감청 시스템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자면 단지 남극만을 감시하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느니 이미 있던 걸 쓰는 게 나은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거기다 전 세계를 감청할 수 있는데 굳이 남극으로 제한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공공연하더라도 비밀은 비밀로 지켜지는 법이었고 롤렉스 같은 말단에게까지 그런 사항이 속속들이 전달되어 있을 리는 없었다. 그러니 지금 같은 반응이 나왔던 것이고, 메터의 한숨은 롤렉스의 반응과 더불어 그렇게 당연한 걸 미처 생각하지 않고 의심 없이 그저 알려진 상식에만 의존한 자신에 대한 것까지 포함한 감상이었다.

“네. 오랜만이에요. 특별한 일요? 없죠. 아하하. 역시 얘기가 빨라서 좋네요. 네, 그럼 늘 보던 자리에서 그 시간에.”

통화를 끝낸 케이시가 메터와 롤렉스를 향해 돌아서선 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바로 이동해야 할 것 같은데, 준비된 교통편이 있나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시선은 대놓고 롤렉스를 향해 있었다. 아무리 롤렉스라고 해도 그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하거나 담긴 의미를 알아채지 못할 수는 없었다. 그 정도로 확실하고 분명한 시선이었다. 그래도 이건 정말로 필요경비에 포함될 법한 항목이라는 게 다행이었다.

“거 쓸데없는 걱정을 하네. 당연히 다 준비가 돼 있지. 기다려봐. 택시를 부를 테니까 말이야.”

롤렉스는 문득 올 때의 비행편도 자신이 다 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물론 비용이야 경비처리 되겠지만 그래도 왠지 자기 돈이 빠지는 것 같이 아까운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메터가 당당하게 돈 없으니 표 값 내달라고 하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지금도 이런 데 필요경비가 무제한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어떻게 될까. 잠깐 그 상황을 상상한 것만으로도 한기가 치솟은 롤렉스는 다시 한 번 어깨를 떨고선 서둘러 택시를 불렀다.



“저깄네요.”

케이시가 구석 자리에 홀로 앉아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그들 일행이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어느 작은 마을의 선술집이었다. 시간은 약간 일렀지만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몇몇이 바 주위에 듬성듬성 앉아있었다. 한편 케이시가 가리킨 남자는 딱히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잔은 딱 하나, 자리도 구석 자리인데다 맞은편 자리라곤 하나 뿐. 때문에 롤렉스와 메터는 머뭇거렸지만 케이시는 거침없이 그쪽으로 걸어가 탁자 옆에 섰다.

“여기까지 어인 일로 오셨나 그래.”

다소 비열한 인상을 지닌 남자의 시선은 여전히 술잔에 머물러 있었다. 케이시가 맞은편의 자리에 앉자 롤렉스와 메터도 그녀의 뒤로 다가와 섰다.

“도살자의 정보, 가지고 있죠?”
“오늘따라 특히 용건이 더 빠르시네.”

남자는 짐짓 휘파람을 불었다. 별 다른 기색은 없었지만 케이시는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최근에 접촉했군요?”

그 말에 남자가 잠깐 멈칫하는 찰나 두 개의 총구가 그의 머리를 겨눴다. 롤렉스와 메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남자도 그저 케이시의 예리함에 놀랐을 뿐 뭔가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지 피식 웃으며 비어있는 양 손을 들었다.

“이봐, 갑자기 무섭게 왜 그래. 여긴 평화로운 마을이라고. 분위기 깨고 싶지 않으면 넣으시지 그래?”

하지만 남자의 말과는 다르게 바에 있는 사람들은 이쪽을 한 번 힐끗 돌아보았을 뿐 별 신경 쓰지 않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들 겁먹고 달아났다하더라도 어차피 둘은 총을 치울 생각 같은 건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메터 같은 경우엔 오히려 일처리하기 더 편해졌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남자도 둘의 태도에서 그걸 눈치 챈 모양인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살짝 뒤로 기울였다.

“목숨 걸고 지킬 의리는 없으니까 딱히 그런 거친 방법 쓸 필요는 없다고.”

손가락을 비비는 동작으로 보아 남자가 요구하는 건 돈이었다. 케이시는 그런 밉상스런 모습에도 눈을 떼지 않고 조용히 입만 열었다.

“롤렉스 씨?”
“얌마. 내가 무슨 화수분인줄 아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어렵게 가려고 해?”

별 말이 없는 걸 봐선 메터도 동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케이시도 빤히 주시하고 있는 걸 보면 역시나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었다. 이에 남자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실망인데? 그래 가지고 무슨 거래를 하겠다는 거야.”
“목숨보다 돈이 아깝다고 하진 않겠지?”
“요즘 같은 세상엔 그런 사람들도 꽤 있지. 안 그런가, 형씨?”

롤렉스의 말에 남자는 메터를 향해 되물었다. 다소 꾀죄죄한 몰골을 보고 처지를 짐작한 모양이었다. 대립만이 계속되는 상황에 케이시는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떴다.

“얼마나 큰 건인진 알고 있죠?”

물으나마나였다. 남자가 도살자와 접촉해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건 그를 쫓는 규모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더욱이 관리국에서 직접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씨익 웃는 남자의 표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케이시가 말을 이었다.

“당연히 완수 시의 보상도 짐작할거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3퍼센트, 떼어드리죠.”

그 말에 깜짝 놀라 쳐다보는 건 롤렉스와 메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건 그들의 보수에서 고스란히 떨어져 나갈 게 분명한 비용이었다. 그래도 지금 끼어들어서 어쩌고저쩌고 할 분위기는 아닌데다 딱히 다른 방법도 없었기에 그저 눈만 크게 뜨고선 케이시가 하는 양을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남자는 영 마뜩찮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좀 그런데. 보통 10퍼센트 선에서 시작하는 게-”
“3퍼센트. 그 이하는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해요. 보통 건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잖아요?”

케이시답지 않게 말을 끊고선 단호하게 대응했다. 그 모습엔 아무리 그라고 해도 약간 놀란 것 같았다. 괜히 술잔을 천천히 흔들며 생각하던 남자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좋아. 정보를 제공하지. 그런데 보수의 보장은 어떻게 하지? 설마 이런 위험한 일에 증서라도 남길 생각은 아니겠지.”
“케이시 포츈벨의 이름으로 보증하죠.”
“하, 그 정도면 충분하지.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볼까.”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들 일행은 차원의 통로 중 하나가 있는 지점에 와있었다. 어제 정보꾼과의 만남은 성과가 있는 듯 없는 듯 미묘한 결과물만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도살자의 정보꾼 노릇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의 거주지나 자세한 인적사항은 모른다고 했다. 은발에 커다란 검을 메고 다닌다는 외모적 특징 정도는 관리국의 자료에도 있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도 도살자와 만날 때는 서로 은밀한 방법의 연락을 통해 장소를 지정하고 만나는 방식을 취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연락을 해서 도살자를 불러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불러낸 순간 단숨에 도살자를 확보하지 않는 한 그의 신변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었고, 이쪽에서도 도살자와의 유일한 접촉선인 그를 함부로 잃는 건 도박이었다.
그래서 온 곳이 바로 여기였다. 기록상으로는 이미 폐쇄된 차원 통로. 하지만 남극에서 도살자를 목격한 이들의 증언을 조합해보면 근래에 목격된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차원 통로가 이곳이었다. 롤렉스나 메터의 생각으론 과연 차원 통로와 연관성이 있을까 싶은 게 사실이었지만 그 정보꾼이 처음 도살자를 만난 곳은 여기라는 정보가 결정적이었다. 잠깐 건전한 사업을 위해 들렸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습격을 받았고 그 때 도살자가 구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결과적으로 케이시의 추론이 맞아 떨어진 셈이었다.

“어째 좀 으스스하다.”

같은 남극인데도 이 주위는 그리 춥진 않았다. 해당 통로와 연결된 세계의 풍경이 그 일대에도 배어나오는 건 차원 통로의 특징 중 하나였다. 꽃이 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소 쌀쌀한 봄 날씨 정도의 공기였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롤렉스의 말처럼 약간 음산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통로를 폐쇄한 관리국의 삭막한 철제 울타리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통로 자체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말 그대로 특정 지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비단 롤렉스뿐만 아니라 메터와 케이시에게도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제 어떡할 텐가.”
“일단 괴물이 나와야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뭐가 되는 거 아냐? 내가 괴물을 부르는 기도라도 올려봐?”
“그 의견엔 동의하지만 그래도 기다리는 건 조금 지루하지 않나요? 전 다른 방법을 권해드리고 싶네요.”

케이시는 어느새 출입제한 테이프를 쫙쫙 뜯고 있었다. 곧이어 울타리까지 옆으로 치우기 시작하자 멍하니 있던 롤렉스가 먼저 달려가고 곧이어 메터도 슬쩍 고개를 젓고선 다가가 도왔다. 그렇게 울타리를 치우고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의외로 철제문 하나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케이시가 롤렉스를 쳐다보자 그녀는 꿍얼대면서 앞으로 나섰다. 관리국의 요원인 그녀에겐 차원 통로라면 비록 제한구역일지라도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런데 예전에 교육 받았을 때 폐쇄된 곳 철문은 혼자선 절대로 열지 말라고 했던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그건 왜 그렇죠?”
“잘 모르겠는데, 이 문이 보통 문이 아니라 뭐 가공되고 어쩌고 하면서 어쨌든 위험해지니까 열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케이시는 뭔가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 사이 롤렉스는 신원 확인을 끝내고선 혼자 문을 낑낑대며 열고 있었다. 뒤에서 보다 못한 메터가 나서서 돕자 문은 쉽게 열렸다. 그리고 그제야 나름의 결론을 내린 듯 케이시가 말을 꺼냈다.

“아마 이 문이 차원의 이상 현상을 주위로 퍼지지 못하게 하는 억제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인데요?”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통로 안쪽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을 덮쳐왔다.

“어머, 즉효성.”

상쾌하게 들리기까지 하는 케이시의 목소리를 두 발의 총성이 덮었다. 메터와 롤렉스가 괴물을 발견하자마자 반응한 것이었지만 둘의 총탄은 허공을 갈랐다. 하나 그것과는 무관하게 괴물은 깔끔하게 동강나서 그 잔재를 흩뿌리고 있었다. 과장하면 집채만하다고 할 수도 있는 덩치의 괴물을 한 번에 갈라버린 공격의 주인공이 바닥에 내려서는 모습이 롤렉스와 메터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순간적인 등장이었지만 은색 머리와 커다란 검만으로도 그가 누군지 알아채는 덴 충분했다. 그리고 롤렉스의 권총이 곧바로 도살자의 뒤통수를 겨눴다.

“포획이다!”

메터의 한 마디에 임무가 사살이 아니라는 걸 상기한 롤렉스는 혀를 차고선 조준을 아래로 내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예상치 못한 충격과 함께 그녀는 옆으로 밀려나 있었다.



틀림없이 도살자였다. 의문의 사내가 누군지 알아본 메터는 그를 겨누기보단 먼저 롤렉스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죽일 작정으로 머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이에 메터는 다급히 소리쳤다.

“포획이다!”

다행히 알아들은 건지 롤렉스는 총구를 슬쩍 낮췄다. 이번에도 저 잡것 때문에 돈이 날아가는 건 사양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놓긴 아직 일렀다. 메터는 그이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을 알아챘다. 도살자는 괴물을 반으로 가르는 시점에서 이미 뒤에 있는 자신들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괴물을 가른 공격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롤렉스를 향해 이어지고 있었다. 그건 롤렉스와의 거리가 다소 떨어져있는데다 그녀의 허튼짓에 경계하기 위해 주의를 극도로 끌어올린 상태였던 덕분에 겨우 포착할 수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전혀 짐작도 대비도 못하고 있는 롤렉스는 확실히 위험에 처해있었다. 메터는 이를 악물고선 숨을 참았다. 준비가 없었던 탓에 크게 활용하진 못하겠지만 어차피 찰나에 결과가 갈리는 경합이었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나마 느려진 시간 속에서 메터만이 자신의 속도로 롤렉스를 덮쳐오는 칼날에서 밀쳐냈다.

롤렉스는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우선 자신을 밀어낸 건 메터라는 것. 그리고 그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박살나서 허공에 흩어지고 있는 자신의 권총, 아니 권총이었던 잔해와 그걸 부순 게 틀림없는 검과 그 검의 주인까지. 도살자는 롤렉스의 권총을 부수고 내려서선 더 이상의 위협은 없다는 건지 그리 크게 경계하지 않고 있는 기색이었다. 다만 그는 매섭고도 진지한 시선으로 열린 철문 너머를 주시하고 있었다.

“전혀 관계가 없는 폐쇄차원에서도 놈들이 나타나다니. 이 차원을 통해 전이되고 있는 건가.”
“반가워요.”

진중하게 노려보던 기색 그대로 시선을 향하지만 케이시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내밀며 악수까지 청하고 있었다. 힐끗 그걸 내려다보고 다시 눈을 마주 보는 차가운 시선에 손은 거뒀지만 여전히 웃음은 잃지 않고 있었다.

“방금 전의 이야기, 조금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둘의 그런 분위기와는 다르게 롤렉스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저 권총은 단순한 보급품이 아니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부터 써왔던 애장품이었다. 그걸 저렇게 박살내놓고 태연하게 등을 돌리고 서서 이야기나 나누고 있다니. 기회였다. 마침 부서진 권총 속에서 튀어나온 미처 사용되지 못한 탄환이 롤렉스의 눈에 띄었다. 그리고 롤렉스는 메터가 채 말리기도 전에 앞으로 뛰어나가 그걸 움켜쥐었다.

“어디 이것도 받아보시지.”

탄환이 걸린 손가락을 튕겨내자 총으로 쏜 것과 다름없는, 오히려 그보다 약간 더 강력해 보이는 궤적이 순식간에 둘의 사이를 갈랐다. 메터가 이번에도 이놈 때문에 망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도살자는 등을 돌린 상태 그대로 메고 있는 검을 슬쩍 비틀어 쥐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거기에 부딪힌 총탄은 그대로 철문으로 튕겨나가 다시 문을 닫아버렸다. 메터도, 총탄을 쏜 롤렉스도, 심지어 마주 보고 있던 케이시조차 조금은 놀란 듯 살짝 입을 벌리고 있는데 도살자만이 태연했다.

“이제 이야기를 할 만하겠군.”
    
소시에   2014-06-02 18:34:23
좋은 진행. 이어받겠다!
Leaf   2014-06-02 20:50:43
과연 쌍것이네.
Y   2014-06-03 14:45:33
ㅋㅋㅋ 이거 전투씬표현같은건 너무 넘사벽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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