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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The apocalypse before us -4-

$기


글쓴이: Leaf

등록일: 2014-06-02 00:07
조회수: 301 / 추천수: 3


추천하신 분들(3명)
Y , 소시에 , 푸폭
 
철컥――――,

두 자루의 권총이 서로를 겨눈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근 2개월만의 재회였을까. 그녀로서는 내심 반가운 마음에 살갑게 인삿말을 건넨 것이었는데 그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어이, 영감.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지? 보는 눈도 많은데 말야."
"그 뻔뻔한 낯짝 다시는 들이밀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아, 누군 오고싶어서 온 줄 아나. 롤렉스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욕지기를 가까스로 집어삼켰다.

"착각하지 마셔. 영감 보러온게 아니라 임무 때문에 온 거니까."
"관리국 녀석들의 임무는 언제나 이기적이고, 무례하고, 남들에게 피해만 주는 것들이지."

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슬슬 눈치를 살피던 손님들은 그녀가 차원 관리국 소속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자마자 썰물처럼 주점을 빠져나갔다. 비록 아무런 잘못이 없더라도 관리국과는 마주치지도 말 것. 그것이 바로 뉴욕 할렘가에서 일상을 보내는 부랑자들의 철칙이었다.

힐끗,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롤렉스는 길다랗게 담배연기를 내쉬었다.
이래저래 미움받는 모양이었다. 그녀로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답답하기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 그 의뢰만 아니었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진 않았을 텐데.

사실, 의뢰 자체는 난이도 B급에도 속하지 못할 정도로 지극히 간단한 것이었다. 9th 지구에서 잔존한 괴 생명체를 사설 단체인 "트와일라잇" 에게 인계받아 차원 관리국까지 운반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1만 유로라는 보기 드문 보수가 책정된 이유는 괴 생명체가 지닌 특수한 능력 때문이었다. 코드명「Mind Eater」. A 등급으로 분류된 차원 생명체로서 접촉한 다른 생명체의 정신을 읽고 그것을 조작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차원 관리국에선 Mind Eater의 뇌를 조사하면 멈춰버린 9th 지구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풀어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차원 관리국의 현장 요원 롤렉스. 트래쉬와 매터를 포함한 청부업자 다수. 그리고 고고학자인 케이시까지. 전대미문, 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구성 멤버였기에 운반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절대 녀석과 접촉해선 안된다는 트와일라잇 관계자의 말도 가볍게 흘려들을 정도였다. 청부업자들이 의뢰 대상에 손을 댈리도 없거니와 케이시가 직접 녀석을 운반하고 있었으니까.

트와일라잇의 본거지인 캐나다에서 차원 관리국이 위치한 남극까지는 꽤나 먼 거리였기에 매터의 본거지가 있는 뉴욕까지 육로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필요한 물자를 준비해서 남극까지 해로로 이동하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항공기를 이용한다면 훨씬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겠지만 예측할 수 없는 위협에 대응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게다가 명목상으론 비밀 임무였기에 세관을 무사히 통과한다는 보장도 없었고. 운반은 지루할 정도로 순조로웠고, 사실상 해로에 접어들면 외부에서의 위협은 없는것과 마찬가지였기에 매터의 본거지에 도착했을땐 벌써 성공을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롤렉스는 그것과 접촉하는 결정적인 우를 범하고 말았다.

물론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터였다. 트와일라잇의 경고를 듣지 못했던 것과 운반 담당이었던 케이시가 마침 자리를 비운 우연이 겹친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고작 1초에 지나지 않았을 시간이었음에도 그 파급력은 엄청났다.

「꺄아아아악!」

수백, 아니 수천의 상념들이 롤렉스의 머릿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내려앉은 어둠 속을 가득 메운 것은 절망, 체념, 공포와 같은 감정의 파편들. 그리고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붙잡은 그녀의 눈 앞에 있었던 것은 매캐한 탄연과 볼품없이 나뒹굴고 있는 Mind Eater의 구속구, 망연자실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얼굴이었다.

그 이후 일주일 동안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어디에서도 녀석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하긴 그렇게 쉽게 발견될 정도였다면 그만큼의 보수가 붙지도 않았겠지만. 씁쓸한 발걸음으로 다다른 차원 관리국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자그마치 2만 유로에 이르는 변상금이었다. 특급 청부업자라 할 지라도 20년은 일해야 만져볼 수 있을 정도의 액수. 당연하게도 일개 청부업자인 그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여지없이 차원 관리국에 억류당할 위치에 처한 그들이었지만 놀랍게도 케이시가 모든 금액을 변상해버린 덕분에 가까스로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편, 임무를 수행했던 대원 중 유일하게 차원 관리국 소속이었던 롤렉스는 임무 실패의 책임을 물어 계약직으로 강등이라는 사상 초유의 징계를 받게 된다.

작전명 Escape From Hell.
그것은 참여했던 모든 이의 가슴에 빚과 좌절을 가득 안겨다 주었던 작전이었다.


딸랑―――,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릴없이 서로를 주시하던 두 사람에게 청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인가요? 아침부터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단아한 화이트톤 원피스에 핑크빛 드레스 햇.
목에 걸려있는 고풍스런 회중시계는 언제나와 같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축포는 그다지 내키지 않네요. 이 근처에는 다른 손님들도 많거든요."

사뿐한 발걸음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온 케이시는 두 사람의 권총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어찌보면 달콤한 회유처럼 보이겠지만 분명히 다른 의도였다. 여기서 소란피우면 의뢰고 뭐고 재미없을 줄 알아, 라는 암묵적인 협박. 게다가 여기는 케이시의 홈플레이스다. 그녀가 손가락을 한 번 튕기기라도 한다면 틀림없이 지옥을 맛보게 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매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매그넘을 홀더에 집어 넣었다.

"…네 부탁이니 특별히 참도록 하지."
"힘든 결정 하셨네요."

매터를 향해 빙긋, 웃어보인 케이시는 롤렉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케이시가 자신의 총을 어루만졌을때 이미 총구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오랜만이네, 케이시. 건강해 보이는데?"
"그러게요. 적어도 1년 정도는 마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여긴 금연이에요."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앗겼다는 사실에 롤렉스는 얼굴을 찡그렸지만 케이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 가운데 있던 테이블에 걸터앉았다.

"다들 바쁜 사람들이니 용건만 간단히 이야기 하죠. 임무? 아니면 사적인 일인가요?"
"임무다."
"임무야."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말이 새어나왔다.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케이시는 쿡, 하고 낮은 웃음을 흘리고서 말을 이어갔다.

"지금 시기에 두 분께서 맡을 정도의 임무라면 그것 뿐이겠네요. 청부업자들 사이에서 한창 관심거리인… 도살자의 포획."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 그녀의 말에 롤렉스와 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짧은 인맥으로나마 알아본 봐에 의하면 도살자의 포획 임무에 동원된 인원은 이미 세자리 수를 넘어선지 오래였다. 게다가 그 하나하나가 모두 개별적으로 행해지는 임무. 그것은 차원 관리국이 도살자에 대해 극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면서도 정보 수집에 애를 먹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케이시가 언급했던 손님들은 바로 자신들처럼 도살자의 포획 임무를 맡은 에이전트나 청부업자들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발전했어도 그 이면에 감춰진 세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만한 곳은 극히 한정되어 있으니까.

"필요한 정보의 범위와 지급할 보수는?"
"도살자의 신상 정보와 녀석이 숨어있는 장소. 보수는…의뢰를 완료하면 지난번 빚졌던 2000유로를 즉시 변제할 것을 약속하지. 거기에 이번 임무 완료 보상의 10%를 추가로 더."
"사실 2000유로의 변제 기간이 오늘까지였던 것 같지만 그 정도는 눈감아 줄게요. 게다가 트래쉬씨 정도의 청부업자라면 그런 일을 실패할 것 같지도 않고요."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케이시의 입에서 낯익은 이름이 튀어나오자 순간적으로 매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비록 티격태격해도 자신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동업자였기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던 모양이다.

"사실 조금 전에 트래쉬씨가 다녀갔거든요. 그렇잖아도 매터씨가 곧 찾아올 거라고 신나게 말씀하시던걸요?"
"쓸데 없는 걸 말하고 다니는군……"

혀를 쏙, 내미는 케이시의 말에 매터는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이지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다. 자신의 거래 상대에게서 타인의 정보를 습득하는 기지機智. 비록 단순한 수완의 일종이겠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최고의 정보상이라는 지금의 위치에 다다랐을 것이리라.

"의뢰는 수락할게요. 대신――,"
"대신?"
"도살자 포획 건에 대한 의뢰서의 소유권은 임무를 완료할 때까지 제가 갖도록 할게요. 저도 만약이라는 재난엔 대비해야 하니까요."

도살자 포획 의뢰서의 소유권을 갖는다, 그 뒤에 숨은 의미를 눈치챈 매터는 또 한번 그녀의 기지에 감탄했다. 의뢰서의 소유권을 양도받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소유권이 넘어간다고 해서 의뢰의 주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매터는 의뢰서가 없다면 의뢰를 완료할 수 없다. 때문에 만약 매터가 다른 마음을 품고 케이시에게 빚진 2000유로를 변제하지 않는다면 도살자 포획 임무는 완료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곧 자신의 지정의뢰를 양도한 트래쉬가 세 번째 지정의뢰를 실패하여 더이상 청부의뢰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 거기까지 상황이 흘러간다면 매터는 2000유로는 커녕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물론 케이시가 다른 마음을 품고 고의로 의뢰서를 넘겨주지 않을 경우도 있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그녀로서는 절대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정도 쯤은 문제 없지."
"그럼~ 잘 받겠습니다."

매터에게서 의뢰서를 건네받은 케이시는 그것을 작은 크로스백에 집어넣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 「매터씨의 유산」, 맡아줘."
"허어이, 유산이라니. 너무 심하지 않나."
"사실 이 가방에는 제 말을 반대로 이뤄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거든요."

케이시의 모습을 바라보던 매터는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가방에 대고 하는 특별한 행동은 전에도 몇 번 본적이 있었지만 딱히 수상한 부분은 발견하지 못했기에 단순히 습관의 일부로 치부하고 있었다. 실제로 거기에 특별한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상 캐묻는 것은 되려 경계를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럼, 그쪽은?"
"의뢰 내용은 나도 같아. 그리고 보수는――,"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던 롤렉스는 케이시가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리자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답했다. 언제 꺼내물었는지 입에는 담배 한 개비가 따사로운 불빛으로 제 몸을 태우고 있었다. 호기롭게 1000유로! 를 외치려던 롤렉스는 문득 자신이 사용했던 경비의 내역을 떠올렸다. 밀린 방세와 식비. 그리고 다소의 술 값과 물고있는 담배 값까지. 비록 차원 관리국에서 지급하는 필요 경비는 백지 수표였지만, 그것이 돈을 낭비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사용한 모든 경비는 임무 완료 후 정산되어 요원의 인사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요컨대, 이미 필요 경비라는 명목으로 상당 수의 금액을 지출해버린 롤렉스로서는 정작 임무에 필요한 부분에서 선뜻 지갑을 열기가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 어쨌거나 그녀로서도 다시 정사원으로 승진해야 여유로운 문화생활을 만끽할 수 있을 테니까.

"100…유로."
"네? 잘 안들리는데,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실래요?"
"100유로! 거기에 추가로 이 몸을 무보수로 고용할 수 있는 특권을 주도록 하지. 물론 의뢰 내용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말야."
"헤에…그런데 차원 관리국에서는 다른 기관이나 사람에게 의뢰를 받지 못하게 되어있지 않나요?"
"그, 그렇긴 하지만…"

차원 관리국에 소속된 요원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임무나 의뢰를 받아선 안된다. 실제로 몇몇 요원들은 임무와 청부업을 병행한적도 있던 모양이지만 단 한명도 예외없이 차원 관리국에서 제명당했다. 물론 차원 관리국에 들키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건 없겠지만. 롤렉스로서도 케이시와의 '약속' 정도로만 넘어갈 요량이었다.

"그럼 나중에 제 부탁을 한가지 들어주는 조건이면 되겠네요. 이렇게 하면 차원 관리국쪽에서도 문제될 게 없고 의뢰에 대한 보수로도 적당한 것 같으니까요."
"부탁?"
"네. 언급하신 거부권도 유효해요.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부탁을 안들어줘도 되니까요. 그 대신……부탁을 들어주기 전까지 가지고 계신 물건 하나만 맡겨주세요. 케이시씨가 생각하고 있는 부탁의 무게와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물건으로요."

부탁의 무게와 같은 가치를 지닌 물건, 이라……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케이시는 코트 안쪽에서 라이터 하나를 꺼냈다. 바디 부분이 백금으로 도금된 지포라이터. 그 한쪽 면에는 'Rolex' 라는 음각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차원 관리국에 들어간 기념으로 선물받은 거야. 모든 차원을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귀한 물건이라고."
"어머, 이런 물건을 받아도 되려나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미 손으로는 자기것인양 라이터를 이리저리 만지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롤렉스는 피식, 하고 입을 열었다.

"걱정 말라고. 반드시 찾으러 갈 생각이니까."
"그럼, 잘 받았습니다. 「롤렉스씨의 마음」, 맡아줘."

롤렉스가 넘긴 라이터까지 갈무리한 케이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짝, 하고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살자는 남극에 있어요."
"뭐?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릴――."

롤렉스는 케이시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소리쳤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매터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흘렸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가 언급한 남극 대륙엔 차원 관리국의 본사가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도 처음엔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아마 두 사람도 보셨겠지만, 의뢰서에 첨부된 자료에 말이죠."

차분하게 이어지는 케이시의 말에 롤렉스는 자신의 의뢰서를 꺼내들었다. 무려 50페이지에 달하는 붙임자료. 거기엔 도살자와 관련된 목격 정보와 사건 기록들이 동봉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작 이런걸로는 도살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없을 텐데――.

"차원 관리국 목격자 67명, 청부업자 목격자 39명. 그리고 기타 12명. 자료에 기록된 바로는 대부분이 '균열' 을 조사하던 도중 도살자를 목격했거나, 그에게 화를 입었다고 되어 있죠.  중요한 것은 그들이 도살자를 목격한 '장소' 에요."
"단순히 남극에서 목격되었다는 보고가 많다는 것만으로는 도살자가 있는 위치를 특정할 수 없을 텐데?"
"네, 실제로 빈도를 따져보면 남극이 31건, 아시아가 13건, 유럽이 16건, 아프리카가 12건, 아메리카가 21건, 오세아니아가 18건. 그리고 표기되지 않은 빈도가 7건이에요. 그럼 여기서 롤렉스씨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남극 대륙에서 일어나지 않은 균열 사건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나요?"

롤렉스는 순간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애초에 '균열' 이라는 것은 남극 대륙에서 발견되던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점차 세계적인 현상으로 대두된 것이 불과 1년 전. 하지만 그것의 빈도수는 남극 대륙에서 발생하는 것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소소한 것이었다.

"없어…"
"아마 그럴 거에요. 요컨대, 남극 대륙에서 목격했다는 빈도수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대륙에서 목격했다는 빈도수가 많다는 것이 이상한 점이에요. 도살자가 순간이동이나 포탈 능력을 지녔다면 말이 달라지지만 차원 관리국에서 그 정도의 거물을 포착하지 못했을리가 없어요."
"목격자들이 녀석에게 매수당했을 경우는?"
"아마 두 분도 익히 아시겠지만, 긍지높은 차원 관리국 요원들을 매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청부업자들을 매수했다고 하기엔 수가 부족하고요."

거기까지 말을 이은 케이시는 잠시 숨을 고르고서 재차 입을 열었다.

"오히려 저는 도살자가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들을 돕다니?"
"균열의 이상 현상과 괴물의 광포화. 그리고 도살자의 등장까지. 시기적으로도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게다가 이미 멸망해버린 4th 지구와 멈춰버린 9th 지구의 이상 현상이 무엇인지 아직 관측조차 되지 않았구요."
"그러니까…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도살자가 위험에 빠진 목격자들을 구해주고서 그 댓가로 자신을 목격한 장소를 날조해달라는 부탁을 했다…라는 말이지?"
"역시 빠른 상황 판단이네요. 그 소란을 피우고도 차원 관리국에 남아있다는게 이해가 갈 정도에요."

롤렉스의 말을 들은 케이시의 입가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뒤에 이어진 그녀의 말은 가히 악담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할 지경이었지만 이미 그런 것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

"그런데 왜? 무슨 이유로?"
"저도 사실 그게 궁금해요. 단순히 자신의 행적을 감추기 위한 목적이라면 너무나도 허술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미끼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어디 날 찾을 수 있으면 한번 찾아봐라, 라는 미끼 말이죠."

케이시는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고서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말없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매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뭘 해야하지?"
"뭘 하긴요. 도살자를 잡으러 남극으로 가야죠. 상당히 긴 여행이 될 거니까,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거에요."
"하지만 이 정도로 준비할 녀석이면 너로서도 찾아내기 힘들지 않겠나?"
"후후, 저를 과소평가 하시는 건지, 도살자를 과대평가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마 도살자에겐 정보에 능한 조력자가 있을 거에요. 그리고――,"

뚜벅 뚜벅,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케이시는 빙글, 하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 조력자는 왠지 제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푸폭   2014-06-02 00:29:49
떡밥만 심히 던져 놓네
소시에   2014-06-02 00:30:38
이리저리 쓰이면서 캐릭터들 성격이 다듬어 지면서 입체적이 되가고 있다.
Y   2014-06-03 14:38:46
올ㅋ 미흡한 정보만 가지고도 잘 조합해서 제대로 찾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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