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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The apocalypse before us -2-

$기


글쓴이: 소시에

등록일: 2014-05-22 05:02
조회수: 297 / 추천수: 3


추천하신 분들(3명)
Y , 푸폭 , Leaf
 
깨어진 유리 창.
부서진 음료잔과 흘러나온 액체로 젖어 버린 서류들.
바람에 나부끼는 찢어진 커튼.
어지럽게 널브러지고 쌓여진 책 틈 사이로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가 봤다면 ‘이건 강도에 의한 살인 사건이다!’ 라고 외칠 법한 혼돈이 만연해 있는 실내에서 시체 역할을 맡고 있던 남자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일어났다.
“...강도인가.”
그러나 주변을 살피던 남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황당하리만큼 태연한 남자의 태도는 멀찌감치 놓인 의자에 앉아 그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의 화를 돋구고 말았다.

탕! 탕! 탕!

쿠션도 없고 팔걸이도 없어 불편했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여성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 들고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쏴 재꼈고 남자 근처에 있던 책 몇 권에는 총알이 지나간 흔적이 선명하게 남겨졌다.

“당분간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남자는 여전히 눈도 뜨지 않고선 수염이 복슬복슬하게 난 입을 움직여 잠결에 하는 말처럼 그렇게 말했다.

  “이정도 했으면 적어도 일어나 주는 게 예의 아냐?”
여성은 말에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의 짜증을 담아서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아까울 만큼.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고른 숨만 쉬고 있었다.

“외국인이 예의를 찾나......”
“네놈들 코리안들이 말하는 예의는 외국에도 있어. 매너라고 하는 거야. 그게 아니더라도 네가 요전번 일에 대해 요만큼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그러면 안 되는 거고. 그건 송구함 이라고 하던가?”

여자가 뭐라고 하든 말든 손을 뻗어 내용물이 거의 없는 깨진 유리잔을 가져와 남은 내용물을 흡흡 거리며 마시다가, 여전히 목이 탄지 연신 입맛을 다시며 주변을 둘러보던 중 그녀가 흔들고 있는 생수 병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남자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주변의 책을 헤치며 몸을 일으켰다. 쓰러진 책 탑들이 마치 남자를 다시 눕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그 자리를 채웠다.
터벅터벅 걸어가 맡겨둔 물을 찾는 양 뻗었던 손이 민망하게 허공을 가른다.
여성은 예상이나 했던 것처럼 물을 든 손을 뒤로 멀찌감치 빼고는 반대 손으로 들고 있던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당분간 의뢰는...”
“제발. 제발. 이걸로!......요.전.번 빛은 없는 걸로 할 테니까. 응?”
요전번 이라는 말에 남자의 눈썹이 실룩였다. 방금 전의 경박하게까지 들렸던 여성의 목소리가 한껏 애교 섞인 말투로 변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숨기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성과 눈싸움을 벌이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 눈앞에 서류를 받아들었지만 몇 줄 읽지 않고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종이를 허공에 뿌려버렸다.

“관리국과 관여된 임무는 안 해. 그쪽일은 위험도에 비해 남는 게 너무 없다는 걸 알잖나. 아니면 꼭 이 의뢰를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건가.”

여자는 말이 없이 종이를 가리켰다. 자신의 대답은 그곳에 있다는 듯이.
오래된 종이에 인쇄 방식이 아닌 잉크를 쓰는 팬을 사용해서 꾹꾹 눌러쓴 종이는 개인의뢰가 아닌 중개소의 공식의뢰라는 증거 중 하나였고 종이 끝에 적혀진 ‘트래쉬 드레드포트’라는 이름은 공공에게 내려지는 의뢰가 아닌 특정인을 지정한 ‘지정의뢰’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즉 이 의뢰는 눈앞에 있는 트래쉬라는 의뢰인에게 내려진 의뢰라는 소리였다.

“지정의뢰인가. 하고 싶지 않다면 거부하면 될 일이다. 굳이 빚 운운하면서 나한테까지 가져올 필요가 있는 건가?”
“3번...째야. 그거 거절하면......”
“3번째라니 너 그동안 뭘 한 거야?”
“나도 알아. 지정의뢰를 3번 거절하면 중개소에서 이름이 지워진다는 걸.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고 있잖아!”
트래쉬의 어조는 애교를 넘어 애처로움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규칙이라곤 몇 개 되지 않는 중개소였지만 그 중 태반이 ‘어기면 제명’ 이라는 것들뿐인데 중개소에서 제명은 사실상 폐업을 의미하기 때문에 몇 개 되지 않는 규칙은 위법도 마다않는 청부업자들조차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메터. 제발제발제발제발.......”
애처로움을 넘어 애절함의 단계에 들었섰다.
메터는 싫은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 전의 일을 생각해보면 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그 일을 없던 일로 해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후우......저번일의 무마에 더해서 내가 이번에 맡은 일에 보수 50%.”
그럼에도 메터는 평소에는 하지 않던 조건부의 승낙을 한다.
이 남자는 흥정에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흥정을 걸어오면 아예 거래를 없던 것으로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것을 알기에 트래쉬는 ‘30%...’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대문짝 하게 나온 입술을 간신히 움직이며 말을 받았다.
“오우...케이......”

트래쉬는 혼자서 씩씩 거리며 화를 내다가 의뢰인과 만날 시간이 되자 몇 번이고 다시 다짐을 받아놓곤 떠나갔다.
신경 쓰지 않는 척을 했지만 메터도 저번 일만 생각해보면 미안한 마음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무탈하게 의뢰를 마무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 마신 생수병을 아쉬운 듯 만지작거리다가 휙 하니 아무데나 던져버리고는 의자에 눕듯이 앉아 트래쉬가 놓고 간 서류를 다시 펼쳤다.
  

[작전 개요 : 위험인물 포획.
대상 : 통칭 도살자.
대상에 대한 세부정보 : 첨부된 자료.
기한 : 목적 달성 시까지. 혹은 추가적인 지시가 있을 때까지.
※ 붙임자료엔 대상의 대략적인 목격 정보와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 기록이 동봉되어 있으며 대상의 현재 거주지역이나 상세한 신상 정보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해당 정보는 자체적으로 조달하기 바람.]
  
“도살자라......게다가 기한이 목적 달성 시까지인가. 에휴.”
이런 식의 의뢰는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임무 달성까지 얼마가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그 때까지 얼마의 비용이 들어갈지 모르고  설상가상으로 중개소는 임무 달성의 질적 향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한 번에 여러 임무를 맡는 것을 금지로 하고 있었다. 게다가 관리국에서 흘러들어오는 임무는 태반이 정식 루트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착수금도 없는데다가 성공보수도 매우 짜기 때문에 관리국의 임무를 지정의뢰로 받게 되면 동료들은 우스갯소리로 라마단(금식일)에 들었다면서 놀리기도 하였다.

“녀석과 알게 된 이후로 손해만 보는 것 같군.”
그가 앉아있는 책상 앞에는 똑같이 생긴 문서가 두 장 놓여있었다. 한 장은 트래쉬가 놓고 간 것 또 한 장은 얼마 전 자신에게 배달 돼온 문서였다.
잠깐 쓴 웃음을 짓던 남자는 허름한 전화기를 붙잡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받는 이는 없었다. 들려오는 것은 자동 응답기 안내음성 이었다.

“메터 정이다. 나에게 들어온 지정의뢰는 개인사정으로 받지 않겠다. 대신 ‘트래쉬 드레드포트’의 지정의뢰를 내가 받도록 하겠다.”
  
한 시간이 지나고 면도를 해 조금은 말끔해진 메터가 길을 나섰다. 저번 임무가 두어 달 전이니 참으로 오랜만에 외출이었다.
어차피 이윤이 남지 않는 의뢰라면 차라리 빨리 끝내버리는 편이 낫다.
그렇게까지 생각했다면 메터가 가야할 곳은 한 군데 뿐이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이상하게 메터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원치 않던 의뢰를 받아 장기간으로 생각하고 있던 휴업이 깨진 탓도 아니고 익숙지 않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일부러 발걸음을 늦출 정도로 생각에 몰두했다.
그러다 문득 아...하고 발걸음을 완전히 멈춰버리게 할 만큼 짜증나는 기억이 떠오른다.
근래에 보기 힘든 엄청난 액수의 보수.
거의 거저먹는 임무라고까지 생각할 만큼의 믿을 만 하다고 생각했던 구성 멤버.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함께 임무를 했던 동료 태반이 보상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
자신 또한 청소부라고까지 불리면서 온갖 잡일을 다해가며 벌었던 돈의 태반을 잃었다.
연이어 드는 불길한 기억에 지갑 깊숙하게 꽂아놓은 명함을 꺼내봤다.

-고고학자 케이시 포춘벨-
5월 22일까지 2000유로 변제 할 것.(지장)

그래, 메터가 꺼림칙 하게 여기고 있던 것의 일부는 이것이었다.
오늘은 5월 21일. 그가 오늘 케이시를 찾아간다면 빚의 변제가 함께 이뤄져야만 했다.
  
‘......어떻게 할까.’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생각난 것을 감사해하며 메터는 발걸음을 뒤로 해야 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케이시의 도움은 절실하지만 이번 의뢰를 그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한다고 해도 트래쉬에게 받을 성공보수 태반을 빚 탕감에 써야 되기 때문이다.
‘아니 고민할 여지가 없지. 빚은 남기지 않는 편이 좋아.’
평소의 메터라면 망설임 없이 선택할 일이었지만 지금 그는 이런 사소한 감상에 빠질 정도로 궁핍해진 스스로를 자조했다.
아까 전 트래쉬의 부탁을 처음엔 거절했지만 사실 자신 때문에 그녀가 입은 피해를 생각해보면 무보수로 일을 해줘야 할 판이었는데 적반하장으로 조건까지 걸었음에도 그녀가 응한 것은 용한 일이었다. 아마도 이번에 맡은 의뢰가 어지간히도 노다지였던 모양이다.

‘이게다..롤렉스. 그 놈 때문이지.’
마지 원수의 이름을 읊조리며 메터는 이를 갈았다.
그래. 그녀만 없었다면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려서 아주 오랫동안 일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허름한 집에 창문이 깨지고 얼마 남지 않은 유리잔도 못쓰게 되고  미처 읽지도 못한 책들에는 바람구멍이 생기고...2000유로의 빚....이..
화가 턱 밑까지 차올랐다.
진정하려 했지만 한 번 끓어오른 화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멸망한 고향을 떠나 죽을 고비를 지나서 아등바등 살다보니 어느새 인생의 중반도 넘어갔다.
52살. 이제 은퇴하고 모아 논 돈으로 여생을 즐길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만남이 전 재산을 반평생의 노력을 즐거운 앞으로의 미래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가 그렇게 과거의 증오로부터 몸서리를 치며 목적지에 다다랐을 쯤 엄습하는 불길한 기운이 메터의 발걸음을 또 한번 멈추게 했다!

“응? 영감이 여긴 웬일이야.”
  
  들려오는 목소리에 어떠한 망설이는 기색도 없었다.
메터는 허리춤에서 44구경의 매그넘을 꺼내들고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외쳤다.

“이 쌍것이!”
    
Leaf   2014-05-22 09:33:13
흐흐 불운의 아이콘이 되어버렸군
푸폭   2014-05-22 21:26:56
뭔가 다들 케이시를 잡으러 가는 것처럼 되고 있네
Y   2014-05-23 00:30:44
무게감 있는 중후한 아저씨일줄 알았는데..
안타까운 가난이 10분의 사나이를 뒤덮고있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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