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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The apocalypse before u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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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푸폭

등록일: 2014-05-22 01:04
조회수: 293 / 추천수: 5


추천하신 분들(5명)
BlackWood , 작파 , Leaf , Y , 소시에
 
차원관리국 제1서무과는 본래 그 이름에 걸맞게 남극에서 발견된 차원 통로를 연구하는 각국 연구소들의 서류 작업과 잡다한 행정 처리를 도와주는 부서였다. 때문에 딱히 연구 경력이 없는 민간인들 중에서 지원자를 받아 1년간 순환근무를 하는 조건으로 인원이 보충되고 빠져나가고 하는 식으로 운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차원관리국의 주요 목적이 바뀌고 그에 따라 위상 또한 달라지자 제1서무과의 역할도 자연스레 달라졌다. 지금 서무과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은 전원 5년 이상 여기서 근무한 경력자들이었다. 쉽사리 인원을 교체할 수 없는 사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산더미처럼 밀린 업무량을 버텨내려면 웬만한 숙련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서무과 내부를 둘러보면 모니터 양 옆으로 산더미처럼 서류철을 쌓아놓고 거의 반쯤 감긴 눈으로 손가락만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실 어딜 보나, 누굴 보나 다 그런 처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여기 창구, 지금은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창구 앞의 자리에 앉아 열심히 키보드에 손을 놀리고 있는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만성피로로 수척해진 얼굴과 눈 밑의 그늘로 봐선 짐작하기 어렵지만 청년은 이 중에선 신입 축에 속하는 편이었다. 딱 5년 전에 보충된 인원이었으니. 처음 여기 와서 일을 시작했을 땐 이걸 사람이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기가 질릴 정도였지만 하다 보니 지금은 이렇게 그럭저럭 해내게 됐다. 청년이 여기 적응하기 위해 깨우친 비법은 딱 하나였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눈앞에 있는 작업량을 받아넘기고 계속 받아넘겨라.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왜 하고 있는 거지? 이런 류의 잡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그 때부턴 더 이상 여기서 일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오늘도 무념무상으로 손가락만 움직이고 있는 그의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낮게 똑똑. 그리고 조금 뒤엔 좀 더 경쾌하게 똑, 똑똑똑. 뭔가 싶어 무시하자 그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거칠게 쾅쾅거리는 소리가 났다. 청년은 그제야 느릿하니 모니터에서 시선을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창구 너머엔 기묘한 인상의 여성이 서있었다. 화사한 백금발의 긴 생머리에 마치 태평양 어느 작은 섬의 해안가 같은 푸른색의 눈동자. 게슴츠레한 동태눈에 담배를 물고 있느라 비뚤한 입모양을 감안해도 꽤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왠지 몰라도 한쪽 눈썹이 치켜서있는데다 미간엔 잔뜩 주름이 잡혀있었다. 청년이 기묘한 인상이라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그는 하도 쓸 일이 없어 잊고 있었던 말을 기억해냈다. 이 상황에 딱 맞는 말이었다.

“어떤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말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잘될까 싶었는데 생각 외로 능숙하게 말했다는 사실에 청년은 약간 뿌듯함을 느꼈다. 처음 여기 와서 직원 교육 받을 때만 배우고 그 뒤로 실제 업무할 때는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말이었다. 심지어 창구직원이었는데도. 하지만 제법 친절한 응대였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는 아직도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다.

“거 뭐야. 작전 명령 C-, 뭐였지. 잠깐 있어봐. 어, 그래. C-0323번 작전 명령서 받으러 왔는데.”
“현장요원이신가보죠?”

여자가 주머니에서 꺼낸 쪽지를 보고 마저 읽어준 작전 명령서를 검색하던 청년이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현장요원이라는 사실이 놀라운 건 아니었다. 제1서무과는 차원관리국이 개편된 후 현장요원의 소속부처이자 관리처로 탈바꿈했다. 그러니 현장요원이 이렇게 찾아와서 작전 명령을 찾고 하는 건 그냥 흔한 일이자 일상 업무였다. 청년이 되물은 이유는 이때까지 이 여자처럼 일처리를 하는 현장요원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현장요원들은 작전은 개별로 알아서 하달 받고 보고는 과장에게 직접 했다. 자신 같은 일반 직원 선에서 현장요원은 지나가는 이나 스쳐가는 명색만 동료 수준이지 이렇게 직접 마주할 일은 없었다. 어쨌든 뽑아달라니 뽑아줄 수는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업무내용에 포함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한참을 해보지 않은 업무인 탓에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다.

“왜 이렇게 느려.”

여자는 혼잣말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초조한 듯이 발을 바닥에 구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힐이라도 신고 있는 모양인지 딱, 딱하는 소리가 넓게도 울려 퍼졌다. 청년은 그러고 보면 아까 그 의문의 똑똑 두드리는 소리 전에 저 또각또각 소리가 다가오는 걸 들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업무에 빠져있느라 전혀 여자의 기척을 알아채지 못했고, 그래서 저렇게 잔뜩 짜증이 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양이었다. 청년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찾은 명령서를 출력한 후 여자에게 건네줬다. 그걸 받아든 그녀는 그걸 살펴보더니 한층 더 미간을 찌푸렸다.

“뭐 이런 임무를. 참나.”

자신한테 한 건 아니었지만 괜히 움츠러든 청년은 슬금슬금 모니터로 시선을 향했다. 다시 자신의 업무를 시작하자 마음이 진정됐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흘금 창구 너머를 보자 여자는 이미 떠난 뒤였다.



롤렉스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오랜만에 임무를 받은 참이었다. 그건 좋았다. 마침 요번 달, 아니 요전 달부터 돈이 똑 떨어졌던 참에 수당이 나오는 일거리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늘 하던 대로 작전서를 하달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서무과에 나와서 수령하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팍 기분이 상했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나온 것인데 막상 일을 받고 보니 그냥 집에 누워 있을 걸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작전 개요 : 위험인물 포획.
대상 : 통칭 도살자.
대상에 대한 세부정보 : 첨부된 자료.
기한 : 목적 달성 시까지. 혹은 추가적인 지시가 있을 때까지.
※ 붙임자료엔 대상의 대략적인 목격 정보와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 기록이 동봉되어 있으며 대상의 현재 거주지역이나 상세한 신상 정보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해당 정보는 자체적으로 조달하기 바람.]

포획이라는 목적 자체가 롤렉스한텐 버거웠다. 사살이나 파괴면 모르겠지만. 거기다 무엇보다 대상이 그 도살자라는 것도 껄끄러웠다. 그는 현재 세계에서 판치고 있는 능력자들 중에서도 특이한 축에 속했는데, 일반 대중에게는 거의 인지도가 없지만 차원관리국 내에선 엄청난 유명인사인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그를 차원관리국이 알게 된 계기가 그런 사건이었으니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알려진 이미지로는 흉악 그 자체인 게 도살자였다. 이름도 미상, 신원 불명, 그래서 차원관리국에서 임의로 붙인 이름이 도살자니 대충 어떤 작자인지 알만 했다. 하지만 롤렉스는 그런 것 때문에 껄끄러운 게 아니었다. 난폭하고 잔인한 면은 둘째 치고, 신출귀몰하다는 것이 정말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롤렉스는 다시 한 번 명령서 마지막에 붙은 단서를 읽었다. 해당 정보는 자체 조달. 임무 목표가 포획인데 거주지고 신상이고 아무 것도 없이 알아서 조사하라니, 좋게 말해 조달이지 자신을 그냥 팽개친 거나 다름없는 작태였다. 그래도 롤렉스가 이 종이쪼가리를 쫙쫙 찢어서 버리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단서 하나가 더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전 수행 과정에서 지출되는 필요경비는 청구 즉시 지급한다는. 롤렉스는 명령서를 대충 접어서 코트 안주머니에 넣고선 앞으로의 계획을 떠올렸다. 일단은 밀린 방세를 내고, 그 다음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또 맛있는 음식하면 비싼 술이 빠질 수 없었다. 게다가 마침 담배도 다 떨어져가던 참이었다. 과연 필요경비로 인정받을지 의문스런 항목들을 연이어 떠올리는 롤렉스였지만 전부 쓸데없는 생각만 한 건 아니었다. 도살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 가장 직접적으로 부딪쳤던 차원관리국에서조차 겨우 이 정도에 불과한 정보만 수집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곳은 롤렉스가 아는 한 세상에 딱 한 군데뿐이었다. 최소한 이 차원의 지구에서는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그쪽과는 예전에 한 번이었나 몇 번이었나 일을 같이한 적도 있었다. 그 결과로 롤렉스는 징계를 먹고 계약직으로 내려앉았으니 악연이라면 악연이었다. 물론 그쪽도 피해를 보긴 했다. 다시는 당신이랑 같이 일하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의 피해를. 그때 생각을 하니 겸연쩍어진 롤렉스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럼 오랜만에 찾아가볼까.”

길을 떠나기 전에 새 담배를 물고선 불을 붙이던 롤렉스는 생각난 김에 지갑 귀퉁이에 꽂아놓은 명함을 꺼내본 후 따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고고학자 케이시 포츈벨 -

그게 롤렉스를 반기지 않을 게 분명했지만 지금부터 찾아가야 할 사람의 이름이었다.
    
소시에   2014-05-22 01:20:35
2번 타자입니다. 오랜만에 여행을 떠납니다.
Y   2014-05-22 01:29:07
내가 아무래도 캐릭터를 너무 노골적으로 쓴거같네.. ㅋㅋ
두 번째 단락의 청년에서 우리네 직장인들의 애환을 느끼고 갑니다.
Leaf   2014-05-22 01:46:53
어서와 여긴 천국이야
작파   2014-05-22 23:30:58
우왕.... 다들 작업을 시작했다
BlackWood   2014-05-23 15:18:00
?? 어 형 시작하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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