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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연]과거

8기


글쓴이: Y

등록일: 2012-08-28 01:17
조회수: 484
 
빠른 전개 가봅시다잉.
내일 하나 더 올라옵니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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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 뚜, 뚜, 뚜,


바이탈Vital이 비교적 정상임을 알리는 시그널이 단조로운 소리가 최면이라도 걸 듯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고 있다.

- 새근, 새근,

그에 맞추듯 하얀 시트에 고요히 누운 한 소년의 숨소리 역시 일정하게 울린다.

소년의 진단명은 화상 및 유독가스 흡입에 의한 중독,
진단 당시만 해도 진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중했지만 그야말로 놀라운 회복력으로 현재 상태는 꽤나 호전된 상태다.
하지만 몸 여기저기, 특히 왼손에 두껍게 붕대를 감은 채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숨을 이어가는 소년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여전히 위중해 보였다.

“휴우, 번거로운 녀석이네 정말..”

오늘 중에 깨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보호자-실은 에센셜의 점장이다-가 맞은 편의 침대에 걸터앉아 소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한숨을 내쉰다.
소년의 추진력이 이 정도일 줄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너무 무모했다. 설사 모든 것이 계산된 행동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음?”

소년의 숨소리가 약간 바뀐다.
그 차이는 아주 미묘해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알지 못했겠지만 이 강력한 보호자가 알아채기에는 충분했다.

..호오,
그녀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린다. 소년은 눈을 뜨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어떻게 놀려먹을까를 생각하던 점장은 이내 정상적인 대응책을 선택한다.

- 꿈틀
- 착!

빠르게 움직이려는 녀석의 이마를 번개 같은 손바닥으로 한 대 친다.

“괜찮아, 병원이야.”
“...끙, 그렇군요.”

잠시간 멍해져 있던 이미 혼자서도 충분히 호흡이 가능해진 수연이 호흡기를 떼어낸다.

이 녀석은 낮선 곳에서 깨어날 때마다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인다.
아마도 그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계에선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무사합니까, 그 녀석은..”
“애초에 머리털 하나 안 다쳤어. 네 녀석 걱정이나 하라고.”
“다행이군요. 이번엔 아무래도 무리수가 좀 있었는데..”
“그 무리수 잘 먹혀든 것 같아. 애쉴리는 사과 받느라 잠을 못 잘 지경이야. 반면에 필립이라는 녀석은 완전히 매장됐고..”
“......”
“모두 모두 행복한 엔딩을 만든 소감이 어때?”
“..후우, 글쎄요.”

미적지근한 대답이지만 마치 안도라도 하는 듯 수연은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하지만 그런 그를 본 점장의 눈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안도나 즐거움과는 꽤나 떨어져 있었다.

“넌 애쉴리의 뭐가 되고 싶나?”
“..네?”
“그 말 그대로야. 이렇게 위험한 도박을 걸면서까지 넌 그 아이에게 있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 거야?”
“......”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단순하고 직관적인 질문이었지만, 수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아는 모두에게 동일한 이미지를 가진다는 것,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야지만 가능한 일이지.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지금 네 이미지는 모든 이들에게 거의 동일해.”

가만히 그녀의 눈을 맞추는 수연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넌 지금 의도적으로 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있어. 마치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말야.”
“남에게 피해를 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네 그런 점이 어떤 의미에서는 단번에 연정戀情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알았으면 좋겠는데.”

수연의 말을 점장이 끊어낸다.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런 거..”
“정말 상관없어?”
“..네,”

한참을 침묵한 후에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꽤나 건조했다.
하지만 수연의 대답을 들은 점장의 표정은 의외다 싶을 정도로 밝았다.

“..사이코패스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아니었군.”
“제가 사이코패스가 아닌 척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너답잖은 시시한 항변이네.”

- 말려들었다.
수연은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패배감에 표정이 엉망으로 구겨진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그게 궁금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네 이야기를 가져 와.”

상응하는 이야기..
아마도 그것은 그녀가 예전부터 집요하게 물어온 과거 이야기일 것이다.

“..대체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하신 겁니까?”
“뭐 여러 가지로,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걸 듣고 나면 널 좀 더 잘 도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라서 말이지.”

빙글빙글 웃고 있는 점장의 눈빛에선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드리면 될까요.”
“처음부터 전부.”

수연은 결국 긴 한숨을 내쉰다.
언젠가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니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던 이야기,













“전 태어나서부터 버려졌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미국으로 입양되었죠. 제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이였으니 네 살이나 다섯 살 쯤이 아닐까 싶네요.”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라도 있나보네?”
“지금의 전 미국 나이로 17살입니다. 왜냐면 입양되었을 때 전 갓난아기였거든요. 법적으로요.”
“호오, 그런 일이 가능했어?”
“공교롭게도 입양 법이 허술한 주였어요. 뭐 지금 생각해보면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우릴 입양한 양부는 법적으로는 확실한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일본계 미국인으로 관록 있는 변호사였죠. 뭐, 양모는 입양될 때만 얼굴을 비치고 그 이후론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태어나면서 버려진 존재, 그것은 가혹한 운명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고아원에 버려졌던 그는 항상 함께 하던 두 명의 누나들과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문득 자신이 그대로 평범한 가정에 입양된 채 행복하게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수십, 수백 번 되뇌었던 그 가정을 다시금 세워 본다. 하지만..

“아직도 종종 꿈에서 보입니다. 같은 고아원에서 함께 지냈던 두 명의 누나의 손을 붙잡고 만났던 그 작자의 눈이..”

양부의 목적은 추악하고 더러운 욕망의 분출이었다.

“그자의 관심은 오로지 누나들이었습니다. 절 같이 입양한 것은 단지 입양심사국의 의심을 피하기 위함일 뿐이었습니다.”
“..하아,”

그 정도만 들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소아성애자Lolita Complex
그런 자의 손에 들어간 소녀들의 최후란 뻔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소년의 운명 역시도..
점장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안타까움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자는 자신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절 서재에 가두곤 한 발도 나갈 수 없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누나들은 밤마다 그자의 더러운 손길을 견디며 짐승처럼 울부짖어야만 했습니다.”

이미 숱한 아픔 속에서 무두질된 수연의 감정이 그의 목소리를 담담하게 만든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서재는 책들이 가득한 곳이죠. 그자는 추리 소설 광이었어요. 그리고 변호사답게 법전을 서재에 쌓아두고 있더군요.”

어린 수연은 오로지 서재의 책만을 벗 삼아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시작했다.
서류를 위조해 키운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하루에 한 끼만 줬지만, 누나들이 몰래 창문 틈으로 넣어주는 음식들로 버티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친형제는 아니었지만 우린 서로를 의지하며 힘겹게 살아보려고 했어요. 큰누나가 점점 지독해지는 학대를 버티다 못해 목숨을 잃기 전까진 말이죠. 그 이후로 작은누나는 완전히 마음을 잃고 말았죠. 생기가 완전히 사라져 마치 망가진 인형과도 같은 모습으로 그저 숨만 쉬며 살다 얼마 후, 나이가 그자의 욕망의 상한선을 지나자 금새 사창가로 팔려나가고 말았죠.”

서재의 모든 책들을 읽었을 때쯤 수연은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책에서 본, 천재天才라 불리는 이들과 견주어 떨어지지 않는 두뇌를 가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서재를 탈출한 후 갖가지 트릭을 이용해 그자를 죽이는데 성공했다. 물론 타살증거 따윈 발각되지 않았다.

“제가 제 손으로 그자를 지옥으로 보내버린 이후, 전 슬럼가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거친 곳으로 일부러 들어간 이유라도 있나?”
“갈 곳이 없으니까요. 그나마 있던 집은 그 때 봤던 양모가 나타나 팔아버렸거든요.”

그리고 수연은 슬럼에서 감정을 숨기고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이후로 완벽한 클리너Cleaner가 되어 완연한 음지로 들어가기 전까지,

“생각해보니 클리너로 꽤 오랜 시간을 보냈군요. 얼굴을 내밀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으니 오히려 편했습니다.”

고작 열 살 남짓한 몸으로 살인을 경험하고, 그것을 무기로 거친 곳에 들어가 스스로를 단련한 무서운 존재.. 하지만 그만큼 그 인생은 불행했다.
그렇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지금 모든 동정과 연민을 거부한 눈빛으로 덤덤히 허공을 응시할 뿐이다.

“뭐, 이미 지난 일들이니 이정도로 해 두죠.”
“..믿을 만한 존재를 만난 적은 없었나?”
“있었죠. 딱 하나,”
“호오?”
“그 이야기는 나중의 유희로 남겨두도록 하고, 이젠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차례입니다.”
“헤에, 벌써 그렇게 되었나..”

어느덧 점장은 자신이 표정이 수연에게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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