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Limbo

일반


글쓴이: 사평 * http://sapyeong01.egloos.com/

등록일: 2013-04-06 12:51
조회수: 438
 
“어이, 정신 좀 차려 봐!”
“왜 자꾸 기절해 있는 사람을 억지로 깨우려 하는 겁니까? 그냥 놔두세요.”
“이 근처 수색은 모두 끝났고, 조난당한 사람들도 더 이상 없는데 꼬마가 일어날 때까지 마냥 기다릴 필요는 없잖아.”

나는 누군가가 내 양쪽 뺨을 가볍게 때리는 충격 때문에 눈을 떴다.

“어! 일어났다.”
“정말입니까?”
“어디, 내가 좀 보겠네.”

안경을 끼고 있는 할아버지가 내 눈과, 손목의 맥박을 확인했다. 한의원에 가 본적은 없지만, 속으로 시간을 세면서 맥을 짚으시는 걸 보니 한의사를 하시는 분 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은 뒤에서 나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봤다. 할아버지의 바로 뒤에는 선생님, 혹은 샐러리맨 느낌의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와, 방금 뺨을 때려서 나를 깨운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운동복을 입은 남자가 있었고, 그 뒤에는 대충 열다섯에서 스물 정도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별히 이상은 없고, 오히려 너무 건강한 학생이로구만. 혹시 다른 아픈 곳이 있는가?”

나는 내 몸을 덮고 있던 양복 재킷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몸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특별히 아픈 곳이 있는 지를 확인했다. 오랫동안 누워 있어서 몸이 찌뿌둥했지만 아픈 곳은 없었다.

“아뇨, 괜찮아요.”
“그거, 다행이고만.”

운동복을 입는 남자가 다가와 할아버지와 내 사이에 끼어들었다.

“할아범, 쓸데없는 짓은 그만 좀 하고, 얼른 필요한 거나 물어봐. 어이! 넌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알고 있는 거 있어?”
“여기라뇨?”

나는 운동복을 입은 남자의 말을 듣고 주위를 살펴봤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녹색 잔디가 깔린 공터였다. 공터는 제법 넓어 공원 같은 분위기가 났지만, 벤치라던가 하는 구조물은 전혀 없었고, 드문드문 나무가 자라 있었다. 멀리 바라보니, 이 공터를 감싸고 있는 울타리와, 밖으로 나가는 출입구가 그리고 아기자기한 주택단지가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게 보였다. 서양의 시골마을 느낌이 났다.

“모르겠어요. 처음 와보는 곳이에요.”
“역시 너도냐? 이것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여기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게 뭔지 말 해 줄 수 있어?”
“여기오기 전에요? 그야.”

나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말은 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멈춰 버렸다. 내가 여기오기 전의 마지막 기억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완벽한 기억상실은 아니다. 내 이름, 가족, 학교, 친구들, 내가 평소에 하고 지냈던 일상은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마지막 기억은 에매모호한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치 어제 점심시간에 먹었던 급식메뉴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은 것처럼, 알 거 같지만, 기억나지 않는 답답한 느낌이었다.

“됐다, 됐어. 일부러 기억나지 않는 걸 억지로 생각할 필요 없다. 어차피 우리들도 마찬가지니까. 상황을 설명하자면 너처럼 기억을 잃고 이곳에 옮겨진 사람은 스물다섯 명. 모두 이 공원 안에 누워 있다가 차례로 깨어났지. 일단 남자들을 모아서 주변을 탐색해 보기는 했는데, 건물만 있고,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은 없는 거 같아. 엄청나게 수상쩍은 상황이긴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해가 저버릴 테고, 먹는 것도 문제가 되니까 본격적으로 이동을 할 생각이야. 지금까지 너 하나 일어나길 기다린 다고 시간을 지체했으니까 괜한 불평은 하지 말고 잘 따라 와라.”

운동복 남자는 일방적으로 말하고 내게서 몸을 휙 돌렸다.

“자아! 자! 그럼 슬슬 이 공원에서 나가 봅시다. 근처에 교회인지 성당인지가 있으니까 일단 그리로 이동한 다음에 먹을 식량을 구하고 다음 대책을 궁리해 보자고!”

사람은 웅성웅성 거리면서 운동복 남자의 뒤를 따랐다. 나는 내 몸을 덮고 있었던 양복 재킷을 들고 사람들 뒤를 따라갔다.

“저기요 학생, 괜찮으면 그 옷 돌려받아도 될까요?”
“네, 여기요. 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양복 재킷을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에게 돌려줬다. 아까 눈을 떴을 때 보였던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였다. 남자는 돌려받은 재킷을 입고 꼼꼼하게 단추를 채웠다.

“전 한성민이라고 합니다. 작은 사업을 하고 있죠. 학생은 아니 이민정 양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한성민은 내가 입고 있는 교복의 명찰을 보고 내 이름을 말했다. 그는 내가 교복 치마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재킷을 벗어 내 다리를 덮어 준 것 같았다.

“네, 그러셔도 괜찮아요.”
“민정 양은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시네요. 민정 양은 모르셨겠지만, 아까 한번 사람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어요. 다행히 저기 있는 현우 씨가 사람들을 다그치고 통솔을 해서 진정이 되긴 했지만요.”
“저 사람이요?”
“나이도 어린 거 같은데, 행동력이 대단한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자기소개를 했을 때 들어보니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한다더군요. 말하고 행동은 험해도 믿을 만한 사람인 거 같아요.”
“아니지 내 오랜 경험으로 봐서는 종류의 인간은 정말 위험이 닥쳐오거나 하면 가장 먼저 혼자 도망칠 사람일세. 난폭하고 진중함이 없는 사람들은 다 그런 법이네.”
“선생님, 걷는 건 괜찮으십니까? 앞에 가는 사람들 보고 속도를 좀 줄이라고 할 까요?”
“이 노인네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진작 속도를 줄이지 않았겠나? 그리고 빨리 걸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내 걷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나를 진료해 준 할아버지, 그러니까 성민 아저씨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할아버지는 흰색 한복을 입은 인상 좋은 할아버지였다.

“그러면 제가 옆에서 같이 걷겠습니다. 민정 양은 먼저 가셔서 앞쪽에 있는 분들과 합류하세요. 그 쪽이 안심이 될 거에요.”
“아뇨, 저도 여기에 있을게요. 먼저 간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도 없을 거 같으니까요.”
“요새엔 참으로 보기 드문 학생일세. 커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말씀 감사합니다.”

우리는 천천히 앞서가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갔다. 다행이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빠르게 걷는 게 아니라 걸어가는 걸 놓칠 일은 없었다. 쓰레기 하나 떨어져 있는 않은 깨끗한 거리와, 그림 같은 주택단지는 사람만 있다면 세상에 있는 어느 마을보다 안락한 마을이었다. 몇 몇 집의 대문이 열려 있었는데, 처음부터 열려 있었던 게 아니라 마을을 조사하기 위해서 한성민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조사를 해서 열려 있는 거처럼 보였다.
우리는 앞서가는 사람들을 뒤따라 커다란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는 3층이었는데, 1층의 높이가 유난히 길었고, 3층 위에는 긴 종탑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은 길쭉한 의자에 앉아 쉬고 있거나, 교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지막에 들어 온 사람들이 문단속 좀 해줘!”

아무도 우리를 신경 쓰고 있는 않은 줄 알았는데, 박현우가 우리를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성민 아저씨는 박현우의 말대로 문을 잠갔다.

“혹시 모르니까 최소한의 안전은 확보해야지. 지금은 잠깐 하고 있는 일이 있으니까 좋을 장소로 가서 쉬고 있어. 전달할 이야기가 있으면 그 때 부를게.”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괜찮다면 저도 도와드리죠.”
“다른 사람들은 휴대전화나 다른 쓸 만한 도구가 있는지 찾는 중이야. 나는 이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 볼 생각인데 같이 가겠어?”
“거기는 무슨 용무로 가시는 거죠?”
“높은 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 마을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알 수 있을 거 아니야. 내가 올라가는 길을 아니까 따라오고 싶은 사람은 따라 와.”
“따라 가겠습니다.”
“저도 갈래요.”
“나도 가고 싶긴 하지만, 혹시 엘리베이터는 없나?”
“아쉽지만, 엘리베이터는 없어, 그리고 만약 있다고 해도 마을 전체에 전기, 가스, 수도가 나오지 않아.”
“자네는 여기 말고 다른 집에도 들어가 봤겠지? 그곳도 이런가?”
“거기는 속이 텅 빈 장난감 집이랑 다를 게 없어, 전기는커녕 가구하나 없더라고.”

박현우는 할 말을 끝내고 교회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와 성민 아저씨는 그를 따라갔다. 박현우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 위로 올라갔다. 예배당이 있는 1층 위에는 사무실이 있었고, 그 위에는 침실, 그리고 더 위로는 종탑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이 있었다. 종은 탑 아래에서 줄을 당기면 칠 수 있는 구조였다. 우리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 탑 위쪽으로 향했다. 푸른 하늘과 함께 마을의 전경이 내려다 보였다.

“젠장. 이건 또 뭐냐.”
“이거....... 기상학 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종탑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형태는 기이했다. 지금 있는 교회를 중간으로 해서, 오른쪽에는 깨끗한 마을이 보였다. 교회보다 높은 건물은 없었지만, 1층짜리 커다란 할인마트 같은 것도 보였고, 가는 길 중간에는 편의점과 일반 상가들도 있었다. 주택도, 이곳보다 좀 더 호화스런 느낌의 건물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을의 끝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장에는 여기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비행기 장도 보였다. 반면에 반대쪽은 아주 참담했다. 짙은 황사 때문에, 반대쪽 끝이 보이지 않은 건 예사고,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물들은 풍화 되서 제대로 된 형체를 하고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건물 밖에 나와 있기만 해도, 폐 속에 모래가 가득 차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박현우는 뭔가를 깊이 생각하면서 한참 동안 마을을 내려다 봤다. 그가 생각을 끝내고 뭔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그의 침묵은 너무 길었다. 결국 성민 아저씨가 말을 꺼냈다.

“이상한 현상이긴 하지만, 목적지는 확인했으니까 그만 내려가도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괜히 사람들한테 걱정을 주지 않도록 마을 반대쪽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뭐, 그렇겠지. 하지만.”

나와 성민 아저씨는 박현우의 말을 기다렸다.

“아니, 됐다. 거리가 좀 아슬아슬 할 것 같지만, 지금 바로 출발하면, 할인마트처럼 보이는 건물까지는 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박현우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응?”

나는 그의 뒤를 따라 내려가기 전에, 귓가에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 기분이 들었다. 아주 작은 소리라 신경을 쓰지 않으면 못 듣고 그냥 지나쳤을 정도로 아주 작은 소리였다.

“무슨 일이죠 민정 양?”
“아뇨, 어디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 거 같아서요.”

나와 성민 아저씨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고양이가 있는지 찾았지만, 고양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스트레스 때문에 환청을 들은 지도 모르겠습니다. 별 거 아닌 일에 깊이 생각하진 마세요.”

우리가 아래로 내려오자, 사람들은 박현우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무리 찾아도, 쓸 만 한 건 전혀 없어요. 전화기는 있기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무용지물이고, 냉장고하고 옷 장 안에도 아무것도 없어요.”
“이렇게 잡동사니가 많은데 건질게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돼? 당신들 지금까지 도대체 뭘 한 거야?”
“뭘 하긴요. 시킨 대로, 전화기하고 식량을 찾고 있었죠.”
“당신 바보야? 그 나이 먹고서도 남이 시키는 대로 밖에 못해?”

분위기가 험악해 지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란이 커지기 전에 한의사 할아버지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할아버지의 손에는 양초와, 성냥, 책, 그리고 코드를 뽑아서 가져온 전화기가 있었다.

“너무 그렇게 사람을 몰아세우지 말게. 쓸 만해 보이는 건 내가 챙겼으니 말일세.”
“역시 노인네라 그런지 머리가 잘 돌아가네. 불은 어느 상황에서도 유용해서 사용할 수 있고, 전화기는 전기가 통신선이 들어오는 건물이면 바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 챙겨둬서 나쁠 건 없지.”
“이것 말고도, 창문에 있는 커튼을 때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네만.”
“좋아, 거기 아저씨들 움직이는데 방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만 커튼을 챙겨. 그리고 챙기는 즉시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할 거야.”
“벌써요?”
“여기서 좀 더 걸으면, 할인마트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어. 거기라면 이 인원이 하룻밤 묵을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먹을 것도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쪽으로 계속해서 걸으면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라. 혹시나 해서 물어보겠는데 비행기 조종할 수 있는 사람 있어?”

손을 들거나, 대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 자동차를 타고 나가면 되겠네. 아주 먼 거리는 아니니까 오늘 해가 질 때까지 마트에 도착 할 수 있으면 내일 중으로 여기서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좀 힘들어도 걷도록 해.”

이 마을에서 나갈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박현우의 말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묵묵히 그의 말을 따랐다.

“할아버지, 들고 계신 건 제가 대신 들어드릴게요.”
“고마워 학생, 하지만 학생이 들기에도 무거울 것 같네이.”
“그거라면 걱정 마세요.”

나는 커튼을 챙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해 커튼을 한 장 얻은 다음,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물건들을 안에 넣고, 묶어 보자기를 만들었다. 안의 내용물 보다, 보자기가 더 컸지만 그래도 들고 다니기에는 이쪽이 더 편했다.

“민정 양. 그 짐은 제가 들겠습니다.”

성민 아저씨는 내 손에서 짐을 빼앗아 대신 들었다. 그의 손이 거칠게 느껴졌다.

“거기 너희들, 이번에는 뒤쳐질 생각 하지 말고, 똑바로 따라 와!”

박현우는 인원을 확인하고, 우리가 뒤처지지 않게 가장 앞쪽에 서게 했다. 산행을 할 때. 산을 잘 못타는 사람을 선두에 세우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거리를 걸을수록, 주변의 모습이 변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주택은 점점 고급스러운 모습을 하기 시작했고, 편의점도 있었다. 도착지인 할인마트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 졌다. 박현우는 이동을 멈추고 편의점 안을 확인했다. 편의점 안에는 보통의 편의점에 있을 법한 식료품과, 물건들이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 여기서 식료품을 보급하는 게 좋겠어. 거기 세 사람은 나 좀 도와줘라.”

박현우는 손짓으로 우리들을 가리켰다. 우리는 무리에서 떨어져 박현우의 곁으로 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저기 보이는 할인마트로 들어가 있도록 해. 그리고 우리가 하룻밤 머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걸 해 놓으라고.”

나는 박현우에게 말했다.

“식료품을 챙길 거라면 우리 말고도, 다른 분들 도움을 더 받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여기에 식료품이 있으니, 할인마트에도 식료품이 있을 가능성도 높아. 이 건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여기 머무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니까 해가지기 전에 마트에 도착 할 수 없을 거야. 약간 굶주리는 것과, 안전한 장소. 둘 중 뭐를 선택해야 될지는 뻔한 거 아냐?”

박현우는 밉살스럽게 말하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박현우의 뒤를 따라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자 남은 사람들끼리 할인마트를 향해 걸어갔다. 박현우는 우리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단 그 커튼부터 펼쳐 놔. 그거 의외로 크니까 제법 많이 챙길 수 있을 거야.”
“식료품을 우선으로 챙기는 게 좋겠죠?”
“당연하지, 될 수 있으면 통조림 같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걸 가져가고 싶지만, 무게 때문에 그건 많이 가져갈 수 없으니까. 식수와, 칼로리바 같은 거 위주로 챙겨.”

할아버지와, 성민 아저씨는 편의점 안을 돌아다니면서 식료품을 챙겼다. 그러는 사이 박현우는 생활용품 코너로 가 뭔가를 주섬주섬 주머니 안에 챙겼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박현우의 곁으로 갔다.

“헤어왁스? 별일이시네요. 이런 것을 챙기시고.”
“남 이사. 내가 뭘 챙기던지 알아서 뭘 하려고. 너도 개인적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챙기지 그래?”
“젊은이, 먹을 것만 챙기지 말고, 구급물품과 약들도 좀 챙기는 게 어떤가?”
“그거 좋네, 그리고 일일이 물어보지 말고 할아범이 필요하다 싶다고 생각되는 게 있으면 알아서 챙겨 둬.”
    
나는 박현우의 말을 듣고, 비닐 포장되어 있는 속옷을 집어 교복 안에 넣었다.

“여긴 다 됐습니다.”

보자기는 처음 가져왔을 때 보다 배 이상 커져 있었다. 성민 아저씨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보자기를 등에 짊어졌다. 영차 하고 소리를 내면서 짊어 매는 걸 보니 무게가 상당해 보였다.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다가와 일회용 가스라이터를 하나씩 건네줬다.

“혹시 모르니 하나씩 가지고 있게. 성냥보다는 이게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걸세.”
“땡큐 할아범.”
“고맙습니다.”

편의점에서 챙길 것을 모두 챙긴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박현우는 해가 지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서둘러야 되겠어. 할아범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선 힘 좀 내줘.”
“걱정하지 말게, 젊은이들만은 못하지만, 폐를 끼칠 정도로 못 걷는 건 아니니.”

우리는 서둘러서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마트로 향했다. 조금 걷다보니 저 멀리 한 사람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걱정 되서 마중 나온 사람인 거 같네요. 이봐요!”
“쉿! 조용히. 뭔가 이상해.”

박현우는 성민 아저씨가 소리를 지르기 직전에 그의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가만히 보니 멀리 서 있는 사람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그는 뭔가를 찾는 거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흐느적거리는 기분 나쁜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그는 곧 우리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걸어 왔다.

“흐익!”
“세상에!”
“......”

사지가 달려있고, 이족보행을 하며 머리까지 달려 있었지만 그건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온 몸은 번질번질한 회색 피부를 하고 있었고, 얼굴의 윤곽은 있지만, 눈이 있을 부분은 움푹 패여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입에서는 흐느끼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는 기절해 버릴 정도로 놀랐지만, 박현우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냉정히 괴물을 관찰했다.

“저, 저건 뭡니까?”
“난들 아냐. 하지만 움직임도 느리고, 우리를 해칠 수 있는 무기도 없는 거 같아. 내가 시선을 끌어 볼 테니 너희들은 반대쪽으로 돌아서 바로 마트로 가도록 해.”
“혼자 괜찮겠습니까?”
“혼자가 아니면 어떻게 할 건데, 너는 짐을 들고 있고, 한명은 노인네인데다. 남은 한명은 중삐리 여자애잖아. 하기 싫어도 내가 할 수 밖에 없지.”

성민 아저씨는 굳은 표정으로 박현우를 쳐다봤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민정 양 이쪽으로 오세요. 최대한 옆으로 돌아가도록 하죠.”

박현우는 우두둑, 우두둑 뼈 소리를 내면서 몸을 풀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괴물은 우리들을 향해 걸어왔다

“어이! 이쪽이다!”

박현우가 소리를 내자, 괴물은 소리에 반응해 그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틈을 노려 우리는 괴물의 옆을 지나쳤다. 나는 할아버지를 부축한 상태로 최대한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 목적지인 마트까지 전 속력으로 달렸다. 마트 앞에 도착하자 자동문이 열렸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숨이 차서 헐떡이고 있는 우리를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인가요?”
“괴물이 있습니다! 문을 닫아야 되요!”
“괴물이라뇨?”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마트 안의 문을 모두 수동으로 바꾸고 셔터를 내려 완전히 차단해야 합니다!”
“네? 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성민 아저씨의 말을 이해하지는 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워낙 급하게 말하는 소리는 듣고, 서둘러 마트로 통하는 자동문을 수동으로 바꾸고 셔터를 내렸다. 하지만 밖에는 아직 박현우가 남아 있었다. 지금 문을 완전히 닫는다면, 지금 이 행동은 우리를 위해 시선을 끌어준 박현우를 배신한 게 되어 버렸다. 나는 성민 아저씨가 셔터를 내리려는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아직 현우 아저씨가 오지 않았잖아요!”
“민정 양, 지금 그 사람을 기다릴 여유는 없습니다. 그 괴물이 이리로 온다면 우리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괴물은 하나였잖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가면 구할 수 있을 거예요.”
“한명을 구한다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부담할 수는 없습니다! 앗! 민정 양 기다려요!”

나는 더 이상 듣지 않고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말은 밉살스럽게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사람을 모른 척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온힘을 다해 뛰어서 박현우와 헤어졌던 장소에 도착했다. 박현우는 다섯으로 늘어난 괴물들에 포위당해 꼼짝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헐떡거리는 숨을 진정시키고 박현우가 그랬던 것처럼 소리를 질러 그들을 유인하려 하다가 생각을 고쳤다 소리를 쳐서 괴물이 이쪽으로 오면, 이번에는 내가 괴물들한테 당할 저치가 될 거고 하나면 몰라도 이렇게 많은 수를 따돌리고 도망칠 자신이 없었다. 그 때 내 머리에 번뜩하고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박현우가 있는 반대쪽으로 힘껏 라이터를 집어 던졌다. 힘차게 날아간 라이터는 땅을 부딪치면서 불꽃을 튀기며 ‘펑’하고 소리를 냈다. 괴물들은 그 소리에 반응해 박현우를 내버려 두고 라이터가 던져진 쪽으로 걸어갔다. 벌어진 잠깐의 틈. 박현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우리는 별 다른 인사를 하지 않고 마트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라이터가 터진 곳으로 몰려들어 던 괴물들은 다시 우리 쪽으로 자리를 잡고 이동을 시작했다. 괴물들이 움직이는 속도는 사람이 달리는 속도보다 느려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지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위험했다. 무사히 마트에 도착한 우리는 내려가 있는 셔터를 두들기면서 외쳤다.

“문 열어! 우리를 죽일 셈이냐!”
“잠깐이면 되니까 빨리 열어주세요.”

셔터 반대쪽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있는 사람들 보다 우리의 안전이 더 중요합니다. 밖에 뭐가 있던지 식료품과, 전기가 들어오는 여기라면 농성하면서 버틸 수 있어요!”
“잠깐이면 되는 일인데 왜 이리 고집을 구리는 건가! 우리만 안전하자고 밖에 있는 두 사람을 나 몰라라 한다면 그게 사람이 할 짓인가!”

성민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나는 성민 아저씨가 말하는 것을 듣고 배신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감정에 치우쳐서 화를 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니 수가 더 늘어난 괴물들이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건물의 면적과, 용도,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의 외관을 고려하면, 손님용 출입구 말고도, 직원용 혹은 화물적재용 출입문이 건물 어딘가에 있을 거야. 우리가 있는 이곳이 손님용 출입구라고 한다면....... 그래! 이쪽이다!”

혼자 중얼거리던 박현우는 내 손을 잡아끌고 달렸다. 그는 건물을 빙 돌아 다각형인 건물의 한쪽 벽에서 대형화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 논 공간을 찾아냈다.

“그럼 그렇지!”

박현우가 보안실로 들어가 컴퓨터 키보드를 두들기자. 전기로 작동하는 대형셔터가 내려왔다. 우리는 이쪽으로 오고 있는 괴물을 셔터 안쪽에서 지켜봤다. 그리고 드디어 마트 안에 들어 올 수 있었다.

“멍청한 사람들 같으니, 뒷문은 활짝 열어놓고 앞문만 막으면 무슨 소용이야. 가시죠 민정 양.”
“네?”

나는 갑자기 달라진 박현우의 말투에 당황했다. 박현우는 무의식중에 한 말이라 그런지 자기가 어떤 말을 한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가 있는 곳은 화물창고였다. 걸을 때마다 옷, 과자, 음료수, 장난감, 전자기기 등의 물건들이 창고 안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워낙 미로처럼 얽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을 좀 소비하고서 매장으로 이어지는 문을 찾았다. 예상은 했지만, 마트 안은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넓었다. 고층건물이 아닌 1층 건물이라 그만큼 넓이가 어마어마했다. 방금까지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 곳으로 오니까 전혀 다른 장소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박현우는 벽에 걸려있는 매장 지도를 한번 보고서 방향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식품매장 근처에 가자, 커튼을 바닥에 깔고 앉아서 진열대에 진열된 식품들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 두 명을 죽여 놓고 밥이 목구멍으로 잘들 넘어가네!”

사람들은 멀쩡하게 나타난 우리들을 보고 표정이 굳더니 이내 과장되게 웃으면서 우리들을 반겼다.

“역시 대단하네요! 당신들이라면 어떻게든 해 낼 줄 알았습니다!”
“잘 왔어요. 이리로 와서 앉아요.”

나는 어색하고 웃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옆에서 박현우가 눈치를 줘서 지금은 화를 참았다.

“무사했구려!”

우리가 돌아 온 것을 안 할아버지가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밀쳐내고 우리의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네, 다행이야!”

할아버지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토시하나 틀리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말에서는 진심어린 애정이 느껴졌다. 나는 울컥해져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희는 괜찮으니까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할아버지.”
“아무튼 정말 다행일세. 다행이야.”
“감동의 재회를 하는 도중에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어떻게 여기에 들어오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성민 아저씨 아니 한성민 이었다. 그는 뻔뻔하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박현우는 전혀 화난 기색 없이 대답했다.

“건물 뒤쪽에 있는 화물 적재용 출입구를 이용했지. 문단속은 확실히 했으니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거 고맙군요. 거기까진 신경을 못 썼는데 다행입니다.”
“그래, 멍청이 한 명 때문에,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위험 해 질 뻔 했지.”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박현우는 시선을 돌려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당신들한테 해 줄 말이 있어 할아범하고 이 남자한테 들었겠지만, 밖에는 정체모를 괴물이 있어. 시각 보다는 청각에 더 반응하는 거 같아.”
“다수라면 대충 얼마나 된다는 거죠?”
“우리가 여기로 쫓겨 왔을 때는 스물 이상이었어. 적어도 우리들 보다 머릿수가 많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그나마 다행인 건 놈들은 걷는 속도가 느린 편이니 우리가 여기서 준비를 철저히 하면 충분히 마을을 나갈 수 있어.”
“마을 밖에도 그것들이 있으면 어떻게 하고요? 여기서 구조를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여기는 전기가 들어오니 전화선도 있을 거 같은데, 전화기는 뒀다 뭐한 거냐?”
“그러게요. 전화기는 어디 있죠? 지금 바로 해 봅시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할아버지가 가져온 전화기를 찾았지만, 모두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바로 찾지 못했다. 박현우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할인마트니까 어딘가 전화기도 있을 거 아니야!”
“그래요, 찾아봅시다!”

사람들은 마트 안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박현우는 적당한 커튼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나도 그의 곁에 가 앉았다.

“아까는 미안하이. 문을 열어주고 싶었지만, 사람들 반대가 심해서....... 그런데 한성민 저 사람이 반대를 할 줄은 몰랐네, 내가 완전히 사람을 잘 못 봤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오히려 잘 됐어요. 저 한성민이란 사람,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났었거든요. 뭔가 꿍꿍이는 있는 거 같은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곤란하던 참이었어요. 하지만 단순히 자기 세력을 가지고 잘난 척하고 싶어 했던 거 같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는 마세요.”

할아버지는 처음 듣는 박현우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놀라서 눈을 뜨게 뜨고 안경 너머로 그를 쳐다봤다. 박현우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표정, 행동, 어투를 가지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는 경향이 크거든요. 짧은 시간에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난폭한 면을 보여주게 잘 먹히고요. 제 친구의 장기라 한번 따라해 본 건데 예상 외로 효과가 좋았어요. 피로는 상당했지만요.”
“대단하구만 젊은이. 그런데 왜 우리 앞에서는 연기를 하지 않는 건가?”
“여러분 앞에서까지 피곤하게 연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사실 더 이상은 사람들을 통솔 할 자신도 없어요.”
“지금까지 잘 해놓고 갑자기 웬 겸손인가? 혹시 아까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그런 건가?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을에서 탈출할 때 까지는 자네가 통솔을 해주는 게 모두를 위해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실은.”

박현우는 누군가 우리의 말을 듣는 사람이 있는지 주위를 확인하고 말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우리가 향해야 할 곳은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이 아닐 지도 몰라요.”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다른 곳에 또 출구가 있단 말인가?”
“영감님은 모르셨겠지만 이 마을은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어요. 한 곳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앞으로 갈수록 점점 나은 시설이 나오는 곳 우리가 가려고 한 목적지는 바로 이 마을의 끝에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쪽에는 가면 갈수록, 황사가 짙어지는 황폐한 마을이 있습니다. 황사 때문에 끝은 보이지 않았지만, 전 그곳에도 마을을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놀라운 이야기로 구만, 그런데 자네는 왜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저희들이 오늘 이동한 경로를 생각해 보세요. 공원에서 깨어난 후에, 마을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교회로 이동하고, 그리고 그곳에서 마을의 이상현상을 확인하고, 탈출이 가능한 쪽을 향해 걸어서 이 마트에 도착했잖아요. 도중에는 정체모를 괴물까지 만났고요. 꼭 잘 짜인 이야기 같다고 생각 안 해 보셨나요?”
“우리의 행동을 유도당하고 있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자네는 그게 꺼림직 한 거고.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자네는 반골 기질이 있구먼.”

박현우는 반골이란 단어를 듣고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친구 놈의 영향이죠. 저희를 이곳으로 끌고 온 자들은 우리가 이대로 계속 움직여서 골에 도달하기를 원할거에요. 그렇다면 오히려 반대쪽으로 움직이면 뭔가 행동을 하겠지요.”
“사람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혼자라도 갈 생각이신가?”
“네, 괴물들이 걱정되긴 하지만, 이곳에는 없는 게 없으니까 확실히 준비를 해 가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믿는 구석도 있고요.”

박현우는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박현우와 할아버지가 대화를 하는 사이에 한성민이 물과 빵, 초콜릿, 과자 등등을 손에 한 아름 들고 가지고 왔다.

“아직도 여기서 담소를 나누시고 계셨습니까? 이거라도 드시고 요기를 좀 하시죠 기껏 편의점에서 식료품을 챙겼는데 무용지물이 됐네요. 괜한 고생만 한 꼴이 되어 버렸어요.”
“덕분에 괴물의 정체를 알게 됐으니 헛고생은 아니지.”

한성민은 식료품을 내려놓고 우리 옆에 앉으려 했다. 하지만 그걸 박현우가 저지했다.

“잠깐. 미안하지만 쉴 때만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줬으면 하는데. 아무리 나라도 나를 죽이려고 든 사람을 옆에 두는 건 심기가 불편해.”
“의외로 쪼잔 하시군요. 그럼 이것만 말씀드리고 가지요. 방금 전화기를 연결해서 전화를 해 봤는데, 어느 번호를 눌러도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응, 그래.”

박현우가 더 이상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정색하자, 한성민은 자리를 피했다. 한성민이 사라지자, 멀찍이서 우리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다가왔다. 일곱 명이었다. 그들을 우물쭈물 하면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기,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문을 열어드리지 못해서 죄송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됐어. 그리고 할 말이 있으면 괜한 소리 하지 말고 용건이나 말해.”
“그게 저희도 이쪽 그룹에 들어가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룹? 뭐야 그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한성민 씨와 그룹을 짜고 같이 행동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들은 사람을 그렇게 쉽게 내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게 꺼림칙하다고 생각해서 현우 씨 한테 온 겁니다.”
“미안하지만 난 더 이상 대장 노릇하는 건 안 하기로 했어. 내일 부터는 개인행동을 할 거야.”
“그러면 옆에서 따라다니는 거라도 허락해 주세요.”

박현우는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혼자서라도 마을 반대쪽으로 가고는 싶고,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박현우가 말하기 전에 먼저 말했다.

“저희는 마을 반대쪽으로 나갈 생각이에요.”

박현우를 포함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황사가 심해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여기처럼 몸을 피할 곳도 없는 곳인데다, 육안으로 탈출로는 확인하지도 못했지만 그곳을 향할 거예요.”
“탈출로가 있는 확인되지도 않은 험한 길인데 왜 그리고 가려는 거지요?”

나는 박현우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남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건 질색이니까요.”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전 현우 씨를 따라가겠습니다. 탈출로가 어디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좀 더 알아본 다음에 탈출 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요.”
“저도 갈게요.”
“저도요.”

박현우는 한숨을 푹 하고 내 쉬었다. 하지만 기분은 좋아 보였다.

“그러면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우선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줘. 남자들은 나를 따라오고 나머지는 식사 준비를 해. 가스버너나 비슷한 게 있으면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을 거 아냐.”

사람들은 박현우가 지시를 한 대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와 할아버지는 한성민이 놓고 간 음식들을 저 멀리 차 버리고 여자들과 같이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

남자들이 야구 방망이, 골프 채 같은 도구와 등산용 가방에 도구를 넣어 챙겨 오는 동안 우리는 쌀로 밥을 지어 제법 그럴싸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즐겁게 식사를 하고 양치까지 끝낸 후에 박현우는 나와 할아버지에 말 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들은 들은 사람들은 불안감을 보이면서도, 박현우가 한 말대로 무작정 눈앞에 보이는 출구로 나갈게 아니라 충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그의 의견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박현우는 만약을 대비해서 정문 쪽에 보초를 세운 다음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가 어디를 가는 지 호기심이 생겨 그를 따라갔다. 박현우는 의류매장으로 가고 있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거에요?”
“헥? 뭡니까!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사람 뒤를 따라오다니.”
“그냥 심심해서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없다고 바로 말투가 바뀌시네요? 이제 연기는 그만 하셔도 되지 않나요?”
“저는 리더 타입이 아니라 리더를 뒤에서 보조하는 참모 타입이라. 이런 역할은 가면을 쓰지 않곤 힘들어요.”
“그렇게 말하는 거 치고는 잘 하시는데요?”
“어떤 일이든 무리를 하면 못할 것도 어떻게든 하게 되는 법이죠.”

박현우는 말을 하면서 동시에 매장 안에 걸린 옷을 빠르게 훑어보고 골랐다. 순식간에 옷을 고른 박현우는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탈의실에서 나오자 박현우의 옷차림이 후줄근한 운동복에서 화려한 정장으로 바꼈다. 그리고 헤어왁스로 머리를 손질한 그의 모습과 부드러운 표정은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완전히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고 잠깐 얼이 빠졌다.

“집에서라면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걸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도 그렇게 입고 다니면 범죄와 다름없죠. 민정 양도 옷을 갈아입는 게 어때요? 마을 반대쪽으로 가려면 몸을 가릴 수 있는 옷을 입는 게 도움이 될 거에요.”

나는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적당히 청바지와 후드티를 골라 갈아입었다. 교복은 다시 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탈의실에 그대로 두고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사람들이 쉬고 있는 장소로 돌아오자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박현우가 나섰다.

“무슨 일이야?”
“문 밖에서 사람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무래도 현우 씨가 말한 괴물인 거 같아서 어르신께 확인을 부탁하러 왔습니다.”
“내가 시킨 대로 사람이 맞는지 질문은 해 봤어?”
“네, 하지만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은 무기를 들고 싸울 준비를, 다른 사람들은 짐을 챙겨서 옥상으로 이동.”

쾅!-------

갑자기 엄청나게 큰 힘이 셔터를 때리는 소리가 났다. 모두의 시선이 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보통 사람의 서, 너 배 크기의 괴물이 셔터 문을 부수고 들어왔고 그 뒤를 우리가 만났던 괴물과, 아이 크기의 괴물이 따라 들어왔다.

“도망쳐!”

마트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거대한 크기의 괴물은 속도는 느리지만 엄청난 힘으로 거치적거리는 모든 걸 부수며 다가왔고 아이 크기의 괴물은 빠른 속도로 뛰어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박현우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작은 괴물을 노리고 들고 있던 금속 야구방망이를 크게 휘둘렀다. 크게 호를 그리며 휘둘러진 방망이는 우리를 향해 뛰어든 작은 괴물에게 적중했다.

“으럇!”

깡! 하고 경쾌한 타격 음과 함께 작은 괴물이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얼마나 강하게 때렸는지 방망이가 찌그러졌다. 박현우는 이런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지시를 내렸다.

“남자들은 뒤로 후퇴하면서 놈들을 막고, 나머지는 옥상으로 도망쳐!”

박현우는 그렇게 말하고 연이어 달려오는 괴물에게 강력한 발차기를 날렸다. 망설임이 없는 과감한 동작이었다. 남자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에 나와 할아버지를 포함한 사람들은 창고 쪽으로 달렸다. 박현우를 도와 괴물들과 싸우는 사람들 때문에 도망치는 건 수월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무사한 건 아니었다. 우리처럼 옥상으로 방향을 잡고 도망친 게 아니라 겁에 질려 무작정 마트 안을 뛰어다닌 사람 중에는 괴물에게 사로잡힌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붙잡힌 사람들은 중간크기의 괴물들에게 의해서 마트 밖으로 끌려갔다. 창고에 도착하자 쾅! 쾅! 셔터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정문 셔터와는 다르게 무지막지하게 힘이 센 괴물이 없어 문을 부수는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모두 이쪽으로요!”

사전에 박현우와 함께 옥상으로 가는 길을 확인했기 때문에 우리는 빨리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들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옥상 위로 올라갔다. 옥상 위에는 우리 보다 먼저 한성민 패거리가 와 있었다. 한성민은 우리가 옥상위로 올라오자 옥상 문을 잠갔다.

“잠깐만요. 아직 현우 아저씨가 올라오지 않았어요.”
“안타깝지만 그를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저길 보세요.”

한성민이 가리킨 곳을 옥상에서 내려다보자,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수많은 괴물들이 꾸역꾸역 마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가 어느덧 우리가 도망쳐 왔던 후문도 뚫려서 그리고도 괴물이 들어왔다.

“한성민 씨, 언제까지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요?”
“저희가 있는 위치가 언제 발각되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하지만 보세요, 괴물들의 수가 많기는 하지만 무한이 아니에요. 그리고 한 사람이 괴물에게 잡혔을 때마다 적게는 세 마리, 많이는 열 마리 이상의 괴물이 마트에서 나가고 있으니까. 운만 따라 준다면 탈출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군요! 성민 씨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한성민과 이름 모를 남자의 대화를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옥상까지 올라 올 수 있었던 건 이 사람 때문이 아니라. 아래서 괴물들과 싸우면서 시간을 벌어 준 사람들 때문이잖아요! 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가장 먼저 도망친 거뿐이라고요!”
“하지만 민정 양도, 도망친 사람 중 한 명이지 않나요? 제가 민정 양한테 그런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을 텐데요.”

-철썩!-

우리와 함께 온 여자가 한성민의 뺨을 때렸다. 그녀의 이름은 김지애 이었는데, 남편과 함께 이곳에 온 사람이었다.

“우리 남편은 당신들을 지키려다가 가장 처음으로 괴물한테 잡혀갔어! 그런데 그런 소리가 나와!”

-철썩!-
“꺄약!”

한성민은 말을 하는 대신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가녀린 그녀의 몸을 한성민을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옥상 위에는 정적이 흘렀다.

“구해 달라고 부탁한 적 없습니다. 그리고 아래 있는 소수의 사람보다는 여기 있는 다수의 사람들의 안전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한성민은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나는 한성민의 곁으로 걸어가 있는 힘껏 그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굽이 있는 신발이라 제법 경쾌한 소리가 났다.

“끄어억!”

예상치 못한 충격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던 한성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그가 쓰러져 있는 사이 한성민에게 뺨을 맞아 쓰러져 있는 여자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맞은 부위가 퉁퉁 부었고, 입 안쪽이 다쳤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피보다 더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젊은이의 말이 맞네, 단순히 감정적으로 행동해서는 살릴 목숨도 못 구하는 법이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 구해진 삶에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를 먼저 대피시키기 위해서 정체도 모르는 괴물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그들은 모른척하고 우리의 안전만 챙긴다면 그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나?”
“만약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저 인간하고 같이 있으면 반나절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거예요.”

나는 여자를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옥상 문손잡이를 잡았다.

“민정 양 혼자 가서 뭘 할 수 있다는 건가요? 지금 민정 양이 하는 짓은 자살과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시끄러워!”

내가 문을 열려는 순간 강한 불빛과 소음 그리고 바람이 우리를 덮쳤다.

“모두 무사하십니까!”  

헬리콥터였다. 우리가 바람과 불빛 때문에 정신 없어하는 동안 헬기 위에서는 무장을 한 사람들이 줄을 타고 내려왔다. 그들은 흰색 옷에 검은색 조끼를 그리고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구출한 인원은 열두 명. 헬기로 수송하겠습니다!”
“일단, 여성과, 아이 그리고 노약자를 우선으로 수송한다. 나머지는 마트 안으로 돌입, 안에 있는 괴물 놈들을 쫓아내고 마트를 장악해라!”
“Yes Sir!"

지시를 받은 군인들은 일초도 낭비하지 않고 들고 있는 마트 안으로 진입했다. 그들이 진입하자마자 총소리가 들렸다. 혼자 옥상 위에 남은 군인은 무전으로 뭐라고 지시를 더 내린 다음 우리에게 다가왔다.

“구조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상황이 시급하니 자세한 설명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후에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노약자부터, 헬기를 이용해서 수송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어르신부터 탑승하시죠.”
“나는 아래에 있는 우리 일행하고 같이 가겠네. 나는 괜찮으니 다른 사람을 먼저 챙기게나.”
“저도, 나중에 갈게요.”

우리 그룹에 합류했던 사람들은 대답하는 걸 주저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정체모를 괴물에게 쫓겨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한테 확실한 안전보다 달콤한 유혹은 없을 테니까.

“민정 양. 그리고 어르신. 죄송합니다. 저는 이분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저도요, 정말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한 명이 마음을 정하자 다른 사람들도 연쇄적으로 헬기에 올라탔다. 남은 사람은 나와 할아버지 그리고 김지애 이렇게 셋이었다.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만히 계시면 위험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가장 먼저 헬기에 오른 건 한성민 이었다. 나는 그의 뒤통수가 따끔거리도록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쏘아 봤다. 가만히 헬기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던 김지애가 군인에게 물었다.

“괴물한테 잡혀간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요?”
“그것도 걱정하지 마십쇼. 저희는 프로입니다. 100% 안전하게 모든 분들을 구출 할 수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김지애의 얼굴의 화색이 돌았다.

“일단 헬기에 올라타서 상처를 치료하시고 계시면 저희가 알아서 일을 끝내겠습니다.”

김지애는 군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헬기 위에 타려고 했다. 나는 떠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마시고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왜 우리가 현우 아저씨의 주위에 모였는지, 그리고 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괴물들과 싸웠는지 말이에요.”

그녀는 내 눈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결국은 헬기에 오르려던 발걸음을 뒤로하고 우리의 곁으로 왔다. 군인은 우리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 같은 분들을 만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러면 저희가 다른 분들을 모두 구조할 때까지 여기에서 대기하셨다가, 수송차량과 함께 돌아가는 걸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안전을 위한 탈출이 아니었으니까. 사람을 다 채운 헬기는 마을 밖을 향해 날아갔다. 할아버지가 군인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런 일을 한두 번 한 게 아닌 걸로 보이는데, 이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왜 우리들이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났는지 알고 있는 것인가?”
“그 질문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마을에서 탈출한 뒤 말씀 드릴 테니 지금은 좀 참아주십쇼.”
“돌려 말하고 있지만, 결론은 대답할 수 없다는 거로구만.”
“보시는 봐와 같이 저는 군인이라 규칙에 얽매여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한 절차상의 이유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진 마십쇼. 아! 저기 지원부대가 왔군요. 금방 상황이 정리될 겁니다.”

트럭에서 내린 군인들이 총을 쏘면서 마트 안으로 진입했다. 총에 맞은 괴물들은 물 풍선 처럼 터졌다. 군인들은 마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총만 겨눈채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우리와 같이 있는 군인이 차고 있는 무전기에서 통신이 수신됐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대장님! 큰일 입니다! 대형이 있습니다!]
“뭐라고 크기는 어는 정도나!”
[S급 아니 그 이상입니다! 저희가 가진 화력으로는 상대할 수 없습니다!]
“모든 괴물을 죽일 생각을 하지 말고, 화력을 분산시켜서 괴물의 발을 묶어라. 그러는 동안 우리가 사람들을 구조하겠다!”
[Yes, Sir!]

군인은 무전을 끝내고 우리를 바라봤다.

“상황이 좋지 않게 됐습니다. 두 분은 여기서 기다리십쇼.”

나는 더 이상 군인의 말을 듣지 않고 옥상에서 내려갔다. 군인들의 활약 덕분에 괴물의 수는 확실히 줄었다. 아마 남아있는 괴물은 극히 일부. 그리고 셔터 문을 한방에 부수로 들어 온 거대한 괴물 하나.

“뭐하시는 겁니까 돌아오십쇼! 앗! 어르신!”

우리는 군인의 말을 무시하고 아래로 내려왔다. 먼저 내려간 군인들 덕분에 우리는 매장으로 가는 동안 단 한명의 괴물하고도 마주치지 않았다. 박현우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군인이 말한 S급 괴물은 매장 천장에 머리를 닿을 정도로 크기가 거대해서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그 앞에 박현우가 있었다.

“현우 아저씨!”
“젊은이!”
“살아서 두 사람을 보니 반갑긴 한데, 지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주지 않겠어요.”

군인들은 괴물과 가까이 있는 박현우에게 총이 맞을까봐 함부로 사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괴물은 눈앞에 있는 박현우와, 군인들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대치하는 것도 잠시 괴물이 움직였다. 괴물은 마트에서 탈출하기로 생각했는지, 박현우는 내려버두고 마트 밖으로 움직였다. 비록 움직임은 느렸지만, 괴물은 날아오는 총알을 튕겨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쪽으로 오세요!”

군인들이 괴물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에 박현우는 우리를 데리고 창고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옥상이 아닌, 우리가 들어왔던 화물적재용 출입구로 향했다.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단독행동은 위험합니다!”

옥상에 있었던 군인이었다. 박현우는 환한 얼굴로 다가가 그를 양 팔로 껴안았다.

“저희를 구하러 오신 분입니까? 정말 고맙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진정하시고 이 손을 좀.”

군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현우의 무릅차기가 군인의 낭심에 명중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괴로움. 여자인 나는 평생 이해하지 못할 괴로움이 군인의 표정에 나타났다.

“빨리 움직여요!”

우리는 뒤로 멀리 돌아가 마트 입구로 이동했다. 군인들은 괴물과 교전중이라 우리의 모습을 못 봤다. 박현우는 군인이 타고 온 4인용 지프를 탔다. 나는 박현우의 옆자리에, 그리고 할아버지와 지애 언니는 박현우가 메고 있던 가방을 들고 뒷자리에 탔다. 박현우는 차에 시동을 걸고, 능숙하게 차를 움직여 마트에서 빠져나갔다. 우리가 차를 훔쳐 도망치는 걸 안 군인들이 있었지만, 눈앞의 괴물 때문에 우리를 쫓아 올 수 없었다.
박현우는 우리와 왔던 길을 되돌아가가 황사가 부는 쪽으로 향했다. 떠오르는 해가 마을을 밝혀 주었다. 박현우는 지쳐있는 우리들에게, 가방 안에 있는 생수와, 초콜릿을 먹게 했다. 몸에 수분과, 당분이 돌기 시작하자 기분이 한 결 나아졌다. 박현우는 우리가 먹고 있는 동안 두서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불치병을 가지고 있었어요.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는 병인데, 어렸을 때부터 받은 여러 번의 수술과, 약으로 제어하면서 지금가지 버텨왔죠. 만약 약을 제 때 먹지 않으면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쳐서 움직이는 건 물론이고 최악의 상황에는 즉사하는 무서운 병이에요. 그런데 여기 와서는 약을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는데도, 달리는 것도, 온힘을 써서 괴물들과 싸워도 전혀 몸에 무리가 오지 않았어요. 영감님, 영감님도 이미 여기가 어디인지 눈치 채신 거 아닌가요?”
“자네 말을 들으니 나도 이제 확신이 드네, 여기는 저승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걸음을 때던 내가 지팡이 없이 걷고, 뛸 수가 없겠지.”
“우리들의 여기오기 전 기억이 없는 건, 죽기 전 마지막 기억이 쇼크로 인해 사라졌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저나 할아버지처럼, 오랜 시간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죽기 직전의 기억이 사라졌다 해도, 몸 상태가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죠.”
“갑자기 그런 말을 들어봐야 믿을 수가 없는데요.”

지애 언니가 말했다. 언니의 얼굴은 할아버지가 가방 안에 있는 구급약품으로 치료했다. 나도 지애 언니처럼 박현우의 말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저나, 영감님 같은 사람이 아니면 믿을 수 없는 게 당연해요.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믿을 수는 없더라도 머릿속에 정보로서 알아두기라도 하세요.”  

대화를 하는 사이 우리는 황사가 부는 지역에 도착했다. 지프는 황사를 뚫고 앞으로 전진 했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에 쌓여있는 모래 때문에 지프로는 이동 할 수 없게 됐다. 우리는 가방 안에 있던 보안경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지프에서 내려 걸었다. 가방은 박현우가 짊어 맸다. 박현우는 주위에 있는 건물을 모양을 꼼꼼히 살펴보고 방향을 잡았다. 마치 손에 지도를 들고 걷는 것처럼,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궁금했던 걸 현우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혹시 어제 교회 종탑에서 한번 마을을 내려다 본 걸로, 마을 구조를 다 외우신 건가요?”
“암기력이 좋은 편이긴 하지만 아무리 저라고 해도 짧은 시간 100% 외우는 건 불가능해요. 70% 정도만 머릿속에 있고, 나머지는 직관으로 걷는거죠. 지도 읽는 건 이제 이골이 났거든요. 그리고 전 민정 양한테 아저씨 소리 들을 정도로 나이가 많지 않아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든요.”
“그러면 열아홉? 직업이 있다고 하셔서 당연히 한성민 하고 비슷한 나이일 줄 알았어요.”
“고등학교 삼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취직해서 일을 시작했거든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니까 하고 싶은 건 좀 무리를 해서라도 해 봐야죠.”

현우 아저씨, 아니 오빠의 이야기를 듣자, 가슴이 찡 하고 울렸다. 땅만 보며 걷는 게 지쳐갈 무렵, 박현우는 팔을 들어 우리를 멈추게 했다.

“선객이 먼저 와 있네요.”

그림자 하나가 우리 앞을 막고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황사 뒤에 가져져 있던 그림자의 모습이 형체를 나타냈다. 그림자의 정체는 박현우가 낭심을 걷어찼던 군인이었다.  

“여러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위험합니다. 어서 저하고 같이 여기를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어차피 죽은 몸인데, 여기서 더 위험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호기심이 생기네요. 저승에서 죽으면 또 다른 저승으로 가는 건가요?”
“하아, 거기까지 눈치 채셨습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이해시키기가 더 편해지겠군요. 박현우 씨의 말대로 여러분들은 망자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여러분들을 천국으로 안전하게 인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인 즉 자네들은 천사란 말인가?”

군인은 질문을 한 할아버지를 보고 말했다.

“불리는 이름은 다양합니다만, 주로 저승사자, 천사, 이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군인의 입에서 천사, 저승사자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는 동요했다. 현우 오빠가 말하던 게 이제야 현실로 느껴졌다.

“반대쪽에 있는 길이 천국으로 통한다고 했으니, 이쪽 길은 지옥으로 이어지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살아있을 때부터 지옥 입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었는데 잘 됐네요. 잠깐 보고 올 테니 길을 비켜 주시겠어요?”
“그럴 수 없습니다.”

현우 오빠와 군인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군인은 현우 오빠를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도록 강하게 튕겼다. 소리가 퍼지자, 황사 속에 숨어있던 다른 군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군인들에게 완전히 포위당했다, 하지만 현우 오빠는 숨어있던 군인들이 나와도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어 보였다.

“이렇게 기를 쓰고 막으려는 걸 보니 확신이 드네요. 이 뒤에 있는 건 지옥이 아니라 이승으로 돌아가는 길이겠군요. 그리고 이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 졌어요.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말이에요!”

현우 오빠가 말하는 동안 군인들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졌다. 우리는 서로 등을 마주대고 군인들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봤다.

-흐으윽....... 어으으..어.......!-
“으악!”


괴물들이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군인들의 벽이 무너졌다. 마트에서 봤던 거대한 괴물과 작은 괴물들이 군인들을 공격했다.
  
“지금이 기회에요 저를 따라 오세요!”
“정말 끈질기시군요. 하지만 이러면 어떻습니까!”

군인은 하늘을 향해 하얀 빛이 나는 투사체를 발사했다. 하늘 위로 날아간 물체는 상공에서 여러 개로 나뉘더니 황사지역에 있는 모든 건물 위에 떨어져 박살을 내 버렸다.

“건물의 위치를 외어서 이 지역을 통과하고 있었던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괴물들을 처리하고 갈 때 동안 의미 없는 도주를 해 보시죠!”
“제기랄!”

현우 오빠는 욕설을 뱉으면서 내 달렸다. 하지만 건물이 무너지면서 나는 모래연기와, 황사, 그리고 길바닥에 건물의 파편이 굴러다니는 바람에 방향을 둘째 치고 어디가 길인지 아닌지도  구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완전히 방향감각을 잃어서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괴물을 처리하고 우리를 쫓을 군인들도 길을 헤매길 빌 뿐이었다. 가장 먼저 지친 건 할아버지였다. 현우오빠가 가방을 버리고 대신 할아버지를 업고 뛰었지만 이대로가 계속된다면 결국 우리 모두 지쳐서 군인들에게 잡힐게 분명했다. 항상 미소를 짓고 있던 현우오빠의 표정이 피로와, 절망으로 일그어지기 시작할 때 내 귀에 들릴 리 없는 것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야옹~~ 야옹~~-

종탑 위에서 들었던 고양이 울음소리였다. 나는 고양이 소리를 듣고 뛰던 걸음을 멈췄다.

“이쪽이에요!”

그리고 고양이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뛰었다. 다른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 채 내 뒤를 따라왔다. 소리를 따라 달리면 달릴수록, 우리가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안개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는 다리에 도착했다. 우리의 목적지였다. 다리 건너편에서는 계속해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대단해요 민정 양. 여성의 직감이란 건가요?”
“고양이 울음소리를 따라 온 거에요. 지금도 계속 들리잖아요.”

현우 오빠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아무래도 그들에겐 고양이 소리가 안 들렸나 보다.

“아무튼 여기까지 왔으니 남은 건 이 다리를 건너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우리 남편은요? 전 괴물에게 잡혀간 우리 남편을 구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란 말이에요.”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직도 괴물의 정체를 모르시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괴물들은 천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강제로 붙잡고, 이승으로 가는 이곳으로 강제로 끌 고왔어요, 그리고 방금 전처럼 저희를 보호하기 위해서 군인들과 싸우며 시간을 벌어줬고요. 그들은 괴물이 아니에요. 우리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라고요.”
“그렇다면 우리 남편은!”
“먼저 이승으로 돌아가서 누님이 깨어나시길 기다리고 있겠죠.”

멀리서 군인들의 군화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군인들에게 따라 잡히기 전에 다리 위를 걸었다. 안개는 점점 짙어졌고,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제대로 걷고 있는 건지 불안감이 들 때쯤 나는 허공을 밟고 아래로 곧두닥 쳤다. 그리고 아래로, 아래로 깊이 떨어졌다.

.
.
.

눈을 뜨니 나는 환자복을 입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일반 병실이라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천으로 만든 칸막이 너머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Limbo(림보) 혹은 삼도천이라고 불리는 곳 일거다. 나라마다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 적당히 묶어서 설명하면 수명이 다 한 사람들의 영혼이 저승으로 가기 전에 걷는 길이라고 이해하면 편할 거야. 보통은 저승사자, 천사, 카론 같은 자들이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데, 가끔 이를 무시하고 이승으로 되돌아오는 사람들이 있곤 하지. 가끔 뉴스 같은 걸 보면 나오잖아, 도저히 회복될 수 없다고 하는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림보에서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 사람들일거야. 그리고 괴물에 대한 이야기는 네가 말한 게 맞을 거야.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본인의 의지로 중요하지만, 주위 사람의 기도도 무시 못하는 법이니까.”
“그러면 현우 선배를 구해줬다는 커다란 괴물의 정체는 세인 선배가 아니었을까요? 현우 선배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자리를 지키셨잖아요.”
“정말이야? 조금 감동인데.”
“그런 거 아니거든, 마침 이 병원과 관련해서 의뢰 받은 사건이 있어서 그런 거거든!”
“세인 선배! 또 저 몰래 의뢰를 받으신 거에요? 저희 동아리는 해결사 사무실이 아니라고 그랬잖아요!”
“여기는 스네이크. 탈출한다!”

학교 선후배, 그리고 친구끼리의 유쾌한 대화였다.

“할아버지 이제 괜찮아? 안 아파?”
“그럼, 이제 아무 걱정 할 필요 없단다.”
“정말? 그럼 또 같이 놀 수 있는 거야?”

귀에 익은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신이 나서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아빠! 엄마도 이제 괜찮데!”
“정말이니? 그럼 으윽!”
“아빠도 방금 일어났으면서 무리하지 마. 의사 선생님이 엄마도 이쪽 병실로 옮겨준다 하셨어.”

행복에 겨운 한 가족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사람들이 다시 돌아 올 수 있었던 건 기적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자신들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억지로 죽으려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거다. 그에 비교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덤 같은 존재였다.

“병문안에는 복숭아 통조림이 제격인데 왜 자꾸 꽁치 통조림을 사라고 그러는 거야? 모든 걸 네 기준으로 하려고 하지 마. 아! 일어났구나.”

천을 걷고 눈에 익은 검은색 교복을 입은 남자와,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 품속에 숨긴 고양이가 들어왔다. 설마, 나에게만 들린 고양이 울음소리는 이 녀석 때문이었나!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화를 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에, 둘은 멋대로 내 옆에 앉아서 떠들었다.

“역시 구름도시의 의료기술은 대단하단 말이야. 고양이뿐만 아니라 사람도 이렇게 살려내니까. 죽었다 다시 살아 돌아온 기분은 어때.”
“이 놈의 자식들! 다 너네 때문이잖아!”

나는 받은 복숭아통조림을 있는 힘껏 던져 오타쿠에게 되돌려 주었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물건들 모두를 집어던졌다.

“야! 위험하잖아! 아얏! 잠... 잠깐만요! 잘못했으니까 일단 이야기를 아아악!”
“야오오옹~~”
“병원에 웬 고양이가? 잡아!”
“와아! 야옹이다!”

병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아직 오타쿠에게 물어 볼 말이 산더미 같았지만, 지금은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어쨌든 살아있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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