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단편] 고양이

일반


글쓴이: 사평 * http://sapyeong01.egloos.com/

등록일: 2013-02-27 21:29
조회수: 345
 
혹시 모를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먼저 말해 두기로 한다.
나는 고양이란 동물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관심이 없다고 해서 싫어하거나 혐오한다는 건 아니다. 지나가다 고양이가 눈에 보이면 있는가 보다 하고 지나치고, TV에서 귀여운 고양이가 나오면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육비 같은 현실 때문에 금세 포기하고 잊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 때 그 일은 단순한 변덕이고, 우연과 우연히 겹쳐 벌어진 사건이지, 내가 특별히 고양이를 싫어해 한 일은 아니다.

그 날. 나는 기분이 매우 나빴다. 밤을 꼴딱 세며 한 숙제를 학교에 가져가는 것을 잊어버려 엉덩이에 매질을 당하고, 심한 욕설까지 들은 데다. 점심급식은 고기 한 점 찾아 볼 수 없는 채소밭. 마지막으로 수업 중 중간에 조퇴한 놈 대신에 방과 후 청소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열이 머리끝까지 뻗혀 있는 상태에서 하교하는 중 나는 인도 한 복판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따끈따끈한 햇살을 따라 인도까지 나온 주황색 털의 고양이는  내가 다가오고 있는 것도 모른 체 한껏 햇살을 즐기면서 인도 한 복판에 퍼져 있었다. 평소라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조용히 옆으로 지나갔을 테지만 이 때의 나는 매우 기분이 나쁜 상태였고, 고양이가 행복하게 누워 있는 모습이 오늘 하루 고난에 시달렸던 나를 조롱하는 거 같이 느껴졌다. 나는 분풀이로 발로 힘껏 땅을 내려쳐 소리를 내, 고양이를 놀라게 했다. 쾅! 하고 제법 큰 소리가 났고, 반쯤 잠에 취해 있던 고양이는 소리에 놀라 쏜살같이 뛰어 도망쳤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가는 방향이 좋지가 않았다. 잠에 취해 있던 고양이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차도로 뛰어들었고, 지나가던 버스에 치여 순식간에 죽었다. 고양이는 버스 안쪽으로 밀려들어가 나한테는 시체가 보이지 않았고 다만 검붉은 색의 피가 흘러나오는 것만 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버스 기사가 욕설을 뱉는 걸 들으면서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그 고양이를 죽인 셈이라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하루에 수도 없이 죽어나가는 길고양이 중 한 마리일 뿐이다. 나는 어쩌다 생긴 사고라 생각하고 고양이의 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털어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이란 건 사소한 거 하나에 바로 되살아나는 법이다. 하루가 지나고 하교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하교 길을 생각하자, 죽은 고양이에 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처음에는 내 탓에 고양이가 죽었다는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고, 다음에는 왜 하필이면 그날 그 시간에 내가 걷는 길 한복판에 누워 있다가 차도 쪽으로 도망쳐서 죽은 것인지, 불쾌감이 들었다. 고양이가 죽은 원인이 내가 아니라 고양이 스스로 자초한 거라고 합리화를 시키자 기분이 좀 나아졌다. 하교 시간이 되자, 나는 잔뜩 힘을 준 상태로 고양이가 죽었던 길로 걸어갔다.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당당하다는 뜻이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이 길을 걷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나는 고양이가 죽었던 차도를 바라봤다. 차도는 어떻게 청소를 한 건지, 고양이가 죽었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차도가 너무나 깨끗했기 때문에 어제 일이 환상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덕분에 나는 찝찝했던 기분을 모두 날려버리고 마음이 가뿐해 졌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 차에 길 건너편에서 이쪽을 아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검은색과, 짙은 갈색털이 섞인 고양이었다. 나는 어쩌다 눈이 마주친 거겠지 생각하고 집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하지만 목덜미를 찌르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아 뒤를 돌아보자 몸을 서서히 움직여 내 뒤를 따라오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 같은 흔하고 평범한 동물이 자기의 의지로 사람을 보고 슬금슬금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쭈뼛 소름이 돋았다. 특히 눈이 마주치자 모른 척 딴 짓을 하고 있는 모습은 고양이가 아니라 다른 새로운 종의 동물이란 착각마저 들었다. 나는 고양이가 딴청을 피우는 순간을 노려서 전속력으로 집까지 달렸다. 그날 밤은 창 밖에서 고양이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어 한 번도 창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지옥이 시작됐다.
그것들은 사람들에게 의심받지 않게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행동했다. 절대 한 마리 이상 내 눈에 띄는 일이 없었고, 딱 내 눈에만 보일 정도로 거리를 유지했다. 심지어는 버스로 이동할 때에도 서는 정류장 마다 그것도 내 시야가 닿는 곳에는 늘 그것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상담할 수 있는 일도, 만약 한다고 해도 해결될 일이 아니라, 나는 최대한 그것들을 무시하며 억지로 하루, 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이 눈에 보이던 보이지 않던 나는 신경과민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나를 미치게 했다. 눈 아래 다크서클이 짙게 생기고, 작은 일에도 바로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지자, 나는 강제로 병원에 끌려가기 전에,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를 실행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그가 있는 반으로 들어갔다. 그는 창가 쪽 맨 뒷자리에 앉아 아랍어를 연상케 하는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오타쿠’란 별명의 남학생으로 보통은 상대를 놀리기 위해 부르는 별명인 ‘오타쿠’를 스스로 칭하고 다니는 괴짜였다. 하지만 오타쿠라는 일반적인 이미지하고 다르게 그는 음침한 성격도 아니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몰두하는 것 보단, 지금처럼 괴상한 책을 읽거나, 음모론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겼다. 성적은 평범하지만, 학교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전교 1등의 학생보다 그의 두뇌가 비상하다는 걸 알고 있는, 흔히 말하는 천재가 바로 그였다. 오타쿠와 나는 초면이었지만, 그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빈자리의 의자를 끌어다 내게 빌려주었다. 그의 넉살좋은 행동과 말투 때문에 나는 그와 십년지기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쉽게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화내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네. 꼭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삼류 괴담같아.”
“농담이 아니라, 정말 조금만 더 이런 생활이 계속됐다가는 정말 미처버릴 지도 몰라. 무슨 해결 방법이 없을까.”
“원인을 아는 상태에서 해결방법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생각해 봐, 고양이들이 너를 스토킹 하는 이유가 뭔지를. 너 때문에 우리 친구가 죽었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사죄를 해라. 대충 이런 메시지를 너한테 보내는 거겠지.”
“나보고 꽃이라도 들고 가서 공양이라도 하라는 거야?”
“그거 좋네, 한번 해 보지 그래? 그렇게 해서 고양이들의 스토킹이 끝난다면 서로 좋은 일 아냐?”
“만약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면?”
“그 때는 방송국에 연락해서 전파를 탄 다음에 사람들의 도움을 받던가 하면 되지. 어차피 상대는 고양이잖아. 물리적으로 해결할 방법도 반드시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전자를 추천하겠어, 감성적이고 좋잖아.”

오타쿠의 상담이 끝나고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오타쿠의 말이 100% 들어맞을 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말한 대로 상대는 고작 고양이다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나는 학교 근처에 있는 꽃집에 들려 국화를 한 송이 샀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시작된 그 길로 향했다. 역시 이번에도 고양이 한 마리가 계속 따라왔지만 이제는 고양이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볼 테면 똑똑히 보라는 심정이었다. 나는 신호를 확인하고 차가 오지 않는 걸 확인한 뒤 차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고양이가 죽은 자리에 국화를 놓고 묵념을 했다.

‘나 때문에 죽게 해서 미안해. 매년마다 이렇게 찾아 올 테니까 용서해주기 바래.’

짧은 묵념을 끝내는 순간 둔탁한 충격이 몸에 부딪쳤다. 그리고 붕 하는 부유감이 드는가 싶더니 바닥에 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통 속에서 눈을 뜨자 흰색 자동차가 내 눈 앞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뺑소니였다. 움직이지 않는 시선에 보인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긴 그러니까 뺑소니를 했겠지. 그 때 저벅저벅, 누군가가 내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발자국의 주인은 내 눈앞에 섰다. 내 눈에는 그의 다리 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덕시간에 배우지 않았어? 생명은 모두 다 소중한 거니, 작은 동물의 생명이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거. 남의 생명을 빼앗은 대가는, 자신의 생명으로 보상할 수 밖에 없어.”

나는 구급차를 불러줘! 하고 필사적으로 소리쳤지만, 말은 머릿속에서 울리기만 하고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내 애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타쿠는 전혀 바쁠 것 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 너를 이 자리로 유인해서 죽게 한 건 나지만 그렇다면 나를 저주하면서 죽지는 마. 나는 오히려 너를 도와주려고 이리로 유인한 거니까. 녀석들은 생각보다 머리가 좋아서 너를 정신병원에 가두고 평생을 괴롭히다가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이려고 했었거든, 평생을 그러고 사느니 차라리 이렇게 한 번에 훅 가는 게 더 편하잖아. 녀석들은 모두 설득 하는 게 보통일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너를 위해서 고생한 건 알아줘.”

오타쿠는 내가 사온 국화를 내 눈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오타쿠의 다리를 보며 속으로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오늘 점심시간에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걱정을 덜었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져 눈물이 나왔다.

“참, 하나 빠뜨린 게 있는데, 녀석들은 너처럼 매정하지가 않아서 네가 죽는 걸 함께 지켜봐 주겠다고 하네, 마지막 가는 길 심심하지 않아서 좋겠어.”

오타쿠의 다리가 멀어지는 동시에 다른 것이 내게 다가왔다. 고양이들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열 마리는 넘는 고양이들이었다. 고양이들은 급한 기색 없이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아! 그러고 보니 나 때문에 죽은 고양이 시체는 어떻게 되었더라?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죽어가는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기게 될지 생각하면서 어서 내 숨이 끊기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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