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행마천] 4♯. 동아리 전설.

일반


글쓴이: 소시에

등록일: 2013-02-24 17:45
조회수: 405
 
조용한 건물이었다.
용아의 발걸음은 가벼워 혼자 걷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오래전 학창 시절 여자아이를 따라서 왔었던 남학생은 그로부터 십년이 지나 선생님이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사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주변 풍경 속에서 뭔가를 느끼기에는 아무런 추억도 없는 장소였지만 그래도 느껴지는 감회가 새롭다고 느꼈다. 교실로 사용되진 않았지만 생기 넘치는 아이들의 유괘를 담는 공간으로써 존재하게 된 오래된 교사(校舍)는 한 때 잠시나마 품었던 학생이 선생이 되어 돌아온 것을 어떻게 생각 할까?
“감상적이시네요.”
“응...?”
딴생각을 하다가 질문을 듣지 못하고 얼떨결에 답해버렸는데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진지한 답을 원한 질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슬쩍 벽에 어깨가 닿았는데 생각 못한 한기가 얇은 셔츠 안쪽으로 느껴져서 으스스 몸을 떨게 만들었다.
“여기가 우리 행마천의 아지트 입니다.”
말투는 진지했지만 몸짓은 과장돼 장난스러웠다.
옆으로 드르륵 하고 문을 여는 모습이 무대의 막을 여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안쪽은 정면의 창에서 비춰오는 햇빛이 잘못 보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용귀아. 창문을 왜 이렇게 활짝 열어놨어!”
용아는 서둘러 들어가 두꺼워 보이는 커튼을 쳐서 빛을 가렸다. 갑자기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크게 푸푼 커튼 안으로 사라진 용아가 푸으으 라고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커튼을 안정 시켰다.
쌍둥이동생(용귀)가 있나 하고 방안을 둘러봤지만 수많은 의자들과 커튼과 싸움을 끝낸 용아가 있을 뿐이었다.
그때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갈라지며 열렸다.
정확히는 문이었지만 벽과 같은 색으로 페인트칠이 돼 있어서 있다는 걸 유념하지 않아 보이지 않았던 문이었다. 게다가 다시 보니 문손잡이도 없었다.
“안 열었어. 난 계속 수면실에 있었으니까.”
조금 졸린 표정을 하고 있는 인귀가 무료한 표정으로 걸어 나와 말했다.
슬쩍 내 쪽을 쳐다보긴 했지만 이내 흥미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에이...그럼 누구지. 하영이라도 왔다 갔나.”
새로운 부원의 이름 그리고 내가 처음 듣는 이름이 나왔다. 혹시나 했다가 부활동신청서가 교무실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곤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소정의 목적 달성이자는 생각으로 일지를 보여 달라고 말하려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방문자가 찾아왔다.
“오이~왔구나 쌍둥이.”
무심결에 뒤돌아 봤다가 조금 놀라버렸다.
들어온 사람의 키가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족해도 190은 돼보였다.
“이쪽 창문들은 열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열더라도 커튼은 그대로 두라고 했어안했어? 부실을 비울 거면 창은 왜 열어놨어.”
“잠깐 열어둔거야. 부실에 들어왔는데 먼지가 엄청났다고. 오늘 고문 선생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음료 같은 거라도 사놔야 하지 않겠어.”
“으으으”
용아는 뭐가 분한지 속으로 분을 삭이는 듯 신음했다.
그런 와중에 의문의 학생과 눈이 마주친 나는 뭔가 어색해서 손을 흔들었고 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학생이 큰 몸을 숙여 용아랑 뭔가 숙덕대더니 굉장히 놀라하면서 내 쪽을 흘끔 흘끔 처다 보았다.
“아, 안녕?”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던 최소한의 노력이 효과를 발휘했다.
학생이 성큼 성큼 걸어와 내손을 꽉 붙잡았다.
엄청난 효과다.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도서부 박하영이라고 합니다. 이 쌍둥이들과는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로 이를테면 오빠와도 같은 사람이죠.”
누가 오빠야 라며 항의하는 용아는 그렇다고 얼굴이 너무나 가까워서 부담스러웠지만 눈빛이 너무도 진지해서 거부 할 수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하영이라는 건 다른 여자 부원인가 라는 생각을 했지만 남자였다, 게다가 부원도 아니다.
“이 아이들이 이상한 동아리에 가입한다고 했을 때는 상당히 걱정했는데 선생님이라면 아무런 걱정 없이 이 아이들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믿어주는 건 고맙지만...아직 동아리 고문을 맡을 지 결정된 것도 아니고.”
하영의 눈썹이 실룩 거린다.
그리곤 성큼성큼 걸어가 상자를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곤 다시 와선 턱 하니 내 손에 그것을 쥐어준다.
“행복한 마을에...천사는 오지 않는다......일지?”
“네. 선생님!”
목소리에서 흥분이 느껴진다.
“저 박하영. 그동안 문학 소년으로써 수많은 문학들을 접했지만 이것만큼 두근거리는 글은 없었다고 자부합니다. 존경합니다. 선생님.”
아까부터 어렴풋이 느끼는 거지만 박하영이라는 학생이 하는 말은 어딘가 나에게서 핀트가 어긋나 있는 것 같았다.
“처음 지하철에서 선생님의 직원카드를 주웠을 때부터 ‘아. 이것은 운명이야’라고 생각했어요. 설마 새로 온다는 선생님이 학교의 선배님이었다니.”
이번에는 용아가 와서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하하. 내가 이 학교 출신이라는 걸 들었나 보구나. 그래도 뭐 별거 없을 텐데.”
뒤에서 뽀로통하게 서있는 용귀의 표정도 어쩐지 조금은 순하게 보인다.
용아는 점점 더 눈을 빛내고 있고 박하영군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존경’이라는 글씨가 박혀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뭐...야 이 반응은.’
그런 부담스런 시선을 피하고자 손에든 일지를 봤다. 오래되 누렇게 변색된 책에선 곰팡이 냄새 같은 건 별로나지 않았다.
‘뭐야...이거.’
하지만 내손은 일지의 첫 페이지조차 넘기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무의식중에 중얼거린 것은 정말로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20xx년 행마천 16기 서기 정하준-

오랜 시간 속에 조금 달았을 지언즉 내용을 읽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빛바랜 노트였지만 누가 봐도 그렇게 밖에 읽을 수 없는 글자였다. 게다가 이 글씨는 분명 내 글씨였다,
하지만 이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행마천 동아리 활동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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