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행마천] 3♯. 미스터리는 서스펜스를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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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소시에

등록일: 2013-02-24 17:45
조회수: 408
 
“예? 지하창고 열쇠요? 있기야 있지요.”
관리아저씨는 열쇠 함이 아닌 공구가 올려져있던 책상 서랍을 열더니 녹슬어 황갈색을 띄고 있는 열쇠들을 뒤적였다.
“이중에 하나일 텐데...”
아저씨는 슬쩍 내 얼굴을 보시곤 만연의 미소와 함께 녹슨 열쇠 꾸러미를 잔득 안겨주었다.
“이건...?”
“하하 나도 어떤 건지 잘 모르겠네요. 분명 그중에 하나일 텐데요.”
그러면서 양손 가득히 쌓인 열쇠더미 위에 사포도 잊지 않고 올려주셨다. 녹슬어서 그대론 열리지 않을 테니 조심히 갈아서 해보라는 말씀과 함께.
관리아저씨도 할일이 있으실 테니 개인적인 호기심 같은 일을 부탁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열쇠를 받아 들고는 꾸벅 인사를 하곤 관리실을 나왔다. 그러다 문득 창고의 위치라도 물어봐야겠다 싶어서 다시 발걸음을 돌리려하니 조금 먼발치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서관 사서?’
아까 전 동아리 수기를 찾으러 갔을 때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하나 말씀 드린다는걸 깜빡 해서요.”
그것을 위해 나를 찾아다녔는지 사서아가씨의 얼굴은 조금 상기돼있었다.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처음 본 사람을 위해 이렇게 까지 해준다는 건 무뚝뚝한 얼굴과 다르게 정말 성실하고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겉보기만으론 알 수 없나보다.
“어......라?”
하지만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던 그녀가 갑자기 어리둥절 한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 머리를 쓸어 넘기고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저런 얼굴은 뭔가가 생각날 듯 말 듯한 상태에서만 낼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 안타까운 시간은 아무도 도와줄 수없는 혼자만의 시간. 자신과의 싸움! 나는 마음조리며 그녀가 시련(?)을 이겨내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었다.
“......잊어버렸습니다.”
“......”
그렇게 말한 뒤에도 그녀는 표정을 지우지 않고 손으로 턱을 괴곤 다시 생각에 몰두 했다.
“그럼 생각나면 말씀해주세요.”
나는 일단 관리아저씨에게 물어보려던 것을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다시 관리실을 들어가니 꺾어져 들어가는 작업실 안쪽에서 번쩍번쩍 불빛이 비춰왔다. 용접 작업을 하고 계신 것 같아서 불빛이 멈추길 기다리다 조심스럽게 기척을 냈다.
“왜 다시 오셨어요. 맞는 열쇠가 없습니까?”
“아니요. 사실 창고 위치를 여쭤보려고 왔어요.”
내 말에 기가 차셨는지 길게 혀를 차신 아저씨의 표정이 순간 애매모호했다. 그리곤 뭔가 끙끙 앓는 것 같은 목소리로
“허어. 갑자기 왜 기억이 안 나지? 방금 전까지 기억이 났었는데.”
라며 손바닥의 밑 부분으로 자신의 이마를 툭툭 리드미컬 하게 치셨다. 그것이 아저씨가 뭔가 떠올릴 때 하는 버릇 같은 행동인 것 같았다.
“맞아요. 저도 선생님께 창고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왔어요.”
언제 따라왔는지 관리실 문밖에는 사서 아가씨가 서있었다.
“그런데......기억이 나질 않아요.”
때마침 창고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 했던 사서 아가씨와 원래 창고의 위치를 알고 있었던 관리아저씨가 동시에 창고에 대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이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인가?
순간 눈에 보인 벽시계의 시간을 보고서 잠시 멍하던 머리에 스위치가 들어온 것 같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단 전 수업이 있으니까 교실로 가보겠습니다. 아저씨 열쇠는 당분간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그리고 사서님 있다가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아저씨를 뒤로하고 사서 아가씨를 지나쳐 본관 교실로 향했다.
두 번째의 수업도 사실 첫 번째의 수업만큼이나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첫 수업의 떨림과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별일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지하창고에 대한 두 명의 반응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기계같이 출석을 부르곤 수업내용을 칠판에 적고 말하고 수업이라기보다는 마치 말하고 쓰는 기계와 같이 움직인 것 같다.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실 수 없이 수업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수십, 수백 번 외운 내용을 또 외우고 읊고 했던 노력 덕분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의 인사를 받자마자 머릿속에는 창고와 도서실이라는 글자만 존재하는 것처럼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나 나의 돌진은 교실문을 나서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멈춰버리게 됐다.
“선생님!”
기다린 것인지 타이밍이 좋았던 것인지 교실에서 나오자마자 여학생 한명과 마주쳤다.
약간 들뜬 그리고 기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연예인 같은 외모를 가진 쌍둥이의 언니인 최용아였다.
“한 번에 기억하신 거예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한 것이 기쁜지 용아는 싱글벙글 웃었다. 지하철에서 짓궂은 장난을 하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 귀여운 얼굴을 보고 있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지금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용아야. 선생님이 좀 바뻐서...”
“고문 선생님이요!”
내 말을 자르듯 용아가 폴짝 뛰면서 말했다.
“고문?”
“호열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선생님이 동아리 고문을 맡아 주신다고.”
“동아리 고문?......아! 행마천에 대한 이야기 인가?”
용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입원하신 신 선생님이 고문을 맡아 주신다고 하셨는데 갑자기 입원하게 되셔서 고문을 맡아 주실 선생님이 없었거든요. 전 그래서 사실 올해 동아리 활동은 못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자, 잠깐만. 네가 말하는 동아리가 행마천이 맞다고 했지? 그렇다면 아직 확실하게 정하진 않았어. 아직 무슨 일을 하는 동아리 인지도 모르니까.”
“네...그 이야기도 들었지만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늘높이 솟아 있던 강아지 같은 귀가 푹하고 쓰러지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풀이 죽어 보이는 목소리였다. 물론 그녀에게 그런 귀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시 기운이 번쩍 날 만큼이나 발랄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우리 동아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좀 더 알아보고 결정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거 때문에 동아리 일지를 찾고 계신 다는 이야기도.”
“오? 그럼 혹시 지하 창고의 위치를 알고 있는 거야?”
사실 창고를 찾아서 일지를 볼 수 있다면 그 둘이 갑자기 창고의 위치를 잊어버린 이야기는 그냥 웃고 넘길만한 사소한 것이었다.
“지하 창고요? 음...그건 뭔지 모르겠는데 일지라면 잔득 있어요.”
“응?”
“동아리 방에 일지가 있다고요.”
의외의 곳에서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답이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은 곳에서 이변 없이 문제가 해결 되는 건가 싶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당사자한테 물어보는 게 가장 현명했다. 무슨 뒷조사를 하려던 것도 아닌데 도서관을 가고 지하창고열쇠를 찾기 위해 관리실을 찾아 지금도 주머니에 잔뜩 녹슨 열쇠를 넣어놓고 있고.
오컬트니 미스터리니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으면서 스스로 서스펜스를 키워가고 있었다.
“그럼 방과 후에 좀 볼 수 있을까.”
“네. 물론이에요. 선생님. 종례가 끝나면 동아리 방으로 안내할게요.”
“그래.”
신나서 교실로 돌아가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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