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행복한 마을에 천사는 오지 않는다.- 0. 소매치기는 범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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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소시에

등록일: 2013-01-18 00:46
조회수: 400 / 추천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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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m
 
떨리는 손가락, 쭈글쭈글한 손등 위로 어두운 전등불빛이 스며든다. 노인의 주름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거무튀튀한 노트가 물색 눈물로 번져간다.
수북이 쌓여있는 다른 책들은 몇 번의 눈물을 받아 마셨을까.
노인은 앞으로 몇 번의 슬픔을 마주해야 기나긴 여정의 끝을 만날 수 있는 걸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일기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0. 소매치기는 범죄입니다.

정하준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결코 훈남이 아니며 조금 큰 키를 제외하면 평범한 외모를 가진 남자라는 것을. 어쩌면 평범하다는 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남들은 자신의 외모를 평균이하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사춘기 때 너무나도 신경 쓰이던 이런 문제들도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는 무감각 해졌고 덕분에 흔히들 말하는‘사춘기의 열병’에도 빠진 적이 없었다.
건너편 플랫폼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빛에서 어떤 묘한 기대를 갖는 다던가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물론 저렇게나 지긋이 바라본다면 일반 적인 남성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 것이다.
‘혹시...나한테 관심이 있는 건가?’
하지만 하준은 지레짐작 하지 않는다.
지금 행동에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이 있는 것은 결코 소녀를 의식해서가아니라 그냥 평소에는 볼일 이 없는 역사의 광고판 같은 것을 읽고 싶어졌을 뿐이었다.
사실 하준은 광고판 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녀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먼 곳에서 열차가 들어옴을 알리는 긴 경적이 두 번. 울려왔다.

  [뚱] ~ [뚱] ~

열차 사이로 슬쩍 슬쩍 보이는 소녀의 모습에 하준의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열차가 몰고 오는 바람에 먹물 같은 긴 머리카락이 살랑거렸고 실루엣만으로도 알 수 있는 잘빠진 몸매는 그녀가 상당한 미인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미련을 떨쳐버리자’라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열차를 타기 위해 슬쩍 자리를 옮기는 찰나- 팟 하는 기분 나쁜 느낌과 함께 서늘한 바람이 바지 속으로 슬슬 들어왔다.
“뭐, 뭐야?!”
정체 모를 사람에게 하준이 소리치며 뒤돌아보니 그곳에 서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다. 조금 당황하며 바람이 들어오는 뒷주머니를 더듬어보니 주머니는 뜯어져 있었고 지갑은 사라져있었다.
‘이런 식의 소매치기를 당하다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먼발치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거동이 수상한 자를 찾아보려 했지만, 동시에 열차의 문이 열리며 내리는 사람과 타는 사람으로 인해 일대가 일사혼란한 가운데, 특정한 누군가를 집어내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에휴. 어차피 돈도 없었는데.’
예전 학교의 학생증과 점심값 오천 원. 언젠가의 생일에 받은 지갑이라는 점이 조금 걸릴 뿐 잃어버려도 아쉬울 것은 없었다.
하준은 전학 첫날 액땜 하는 셈 치자며 스스로를 위로하고는 탈거라면 빨리 오라는 듯 보이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열차에 한발을 올려놓았다.
“파란점퍼.”
갑작스런 소리와 함께 하준이 뒤돌아보기도 전에 뒤에 서있던 파란점퍼의 남자가― 쿠억 이라는 괴성과 함께 멀리멀리 날아버렸다.
먹같이 진한 잔상과 향긋한 샴푸 향기가 바람에 실려 왔다.

  
남자는 190cm는 돼 보일 정도로 키가 상당히 컸고 덩치 또한 그에 걸맞게 건장했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어디선가 날아와 그를 걷어찬 여성은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애잔한 풍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준을 비롯한 근처에서 그 모습을 보았을 사람들 그 누구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싸움이 벌어진 건가? 라고 생각하곤 모였던 사람들도 눈앞에 보이는 아연한 모습에 어리둥절, 발걸음을 주춤거렸다.
“아씨, 뭐. 뭐야. 갑자기.”
남자는 차인 곳이 아픈지 연신 그 부위를 쓰다듬으며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에게 발로 차인 것 치고는 침착해보였다. 아니면 자신도 너무 어리둥절한 나머지 아직 경황이 없을 정도로 당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런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차는 문을 닫고는 휑하니 출발해 버렸다. 넋 놓고 구경하던 사람 중에 열차를 놓친 사람들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한번 문이 다친 하물며 이미 출발해버린 열차가 멈추는 일은 없기 때문에 단념하고 이렇게 된 바에는 이 재미있는 사건이나 마저 보자는 얼굴이 되어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상황을 찍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 사건은 어떻게 끝나든 간에 소녀에게는‘지하철 폭행녀, 지하철 날라차기녀,’등의 별명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걸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저벅저벅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소녀가 남자 앞에 당도하고 나니 그 덩치 차이는 더욱 커보였다. 이윽고 소녀의 작고 하얀 손이 서서히 올라가더니 검지를 뻗어 남자를 가리키며 외쳤다.
“소매치기는 범죄입니다.”
무미건조해 보이는 소녀의 외침은 방금 전‘파란점퍼’라고 했던  인물과 동일한 목소리였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아까 전부터 반대편 플랫폼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소녀였다.
“무, 무슨 소리야. 소, 소매치기라니.”
남자는 어이가 없는 듯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가며 더듬거렸고 목소리 또한 상기되어 있었다. 한 대 얻어맞은 대다가 갑자기 소매치기라는 소리까지 듣고 나면 누구나 그렇게 될 것이다.
“누구나 한번은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올바른 길로 걷겠다고 결심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빛의 세계로 나오십시오.”
뭔가 결정타를 맞은 듯 남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해갔다.
동시에 하준은 또 한 번 몸을 훑고 지나가는 찌릿한 기분과 함께  전율과 같은 흐름을 따라 닭살이 돋았다.
‘우아. 저거...’
저 아이는 웬만해선 쉽게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그런 낮 간지러운 말들을 술술 내뱉고 있었다. 그것도 억양도 어조도 드러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조금 가까운 곳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 중에도 몇몇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소녀의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다시 보니 사람도 아까보다 많아졌다. 하준의 눈에 비치는 스마트폰의 숫자도 많아졌다. 이 정도로 사람이 있으면 누구 한 명쯤은 경찰이던 역장에게라도 신고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도와주러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소녀의 무표정한 얼굴과 남자의 일그러짐이 점점 더 상반된 모습으로 변해갔다.
하준은 상황에 대한 이해보다도 일단 어쨌든 싸움(?)을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소매치기건 아니든 간에 까딱 잘못돼서 더 이상 화를 못 이기고 폭력이라도 썼다간 저 가녀린 소녀는 크게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서라. 네가 나서면 문제가 더 커질 수가 있으니.”
그때 뒤에서 누군가 하준의 가방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말했다.  자신의 생각을 읽은 듯 완벽한 타이밍에 행동을 저지당한 소년은 뚱한 얼굴로 소리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음?”  
하준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다시금 눈을 비비고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소녀가 자신의 앞에 서있었다.
  소녀는 파란점퍼남 앞에 서있었다.

§

이미 수업 시작할 시간이 10분이나 지났지만 선생님은 오지 않았다.
조용한 교실이었다.
교실 문 앞에 서서 슬쩍 바라본 교실에 대한 감상이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수업을 시작한지 12분이 지났다.  그전에는 간간히 들려오던 잡담소리도 들리지 않고 다들 책을 꺼내 자습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왜 이런 학교로 나를 보냈을까.’
애초에 선택권이 없던 하준은 고등학교만 졸업할 수 있다면 어떤 학교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았는지 하준을 잘나간다는 사립 고등학교로 전학 보냈다. 원래라면 ‘권고 전학’인 하준이 이렇게나 좋은 학교에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최근까지 운동선수로 지냈던 하준의 성적은 원래의 학교에서라면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이곳 같은 전형적인 입시학교에 놓고 본다면 상당히 낮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하준에게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오시면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는 눈에 띄지 않는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적당한 교우관계를 유지하고 너무 떨어지지 않는 수준의 성적을 유지한다. 어차피 대학에 갈 생각은 없었고 얌전히 학기를 마치고 졸업하면 될 일이다. 이렇게나 샌님 학교라면 일진이다 뭐다 하면서 거들먹거리는 애들도 없을 것이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직행인 시스템 상, 그 말미에 그것도 고3 이라는 인생의 중대사가 걸려있는 시기에 전학 온 자신이 누구와도 깊게 연관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고3생 활의 지도를 그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네가 정하준이니?”
조금 딴생각을 하다가 마주한,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선생님에 얼굴에 놀라며 뒤로 물러섰지만 교실 벽이 가로막혀 있어 그리 멀리는 가지 못했다.
“어머 미안. 내가 놀라게 했나보구나.”
선생님의 말투는 나긋해서 사과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타이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지만 정말로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다는 것 정도는 전해졌다.
“아뇨. 괜찮습니다.”
선생님은 방긋 웃어 보이며 얼굴을 돌려 시계를 보았다.
“이런 20분이나 늦어버렸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
하준은 선생님의 뒤를 따라서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선생님이 뒤에서 미는 바람에 어정쩡한 자세로 교실에 먼저 들어섰다.
사람들의 이목이 몰렸고 작은 선생님에게 계속해서 밀려 얼떨결에 교실 중앙까지 와버렸다.
그녀는 인사를 시키려고 했던 아이-아마도반장을 앉게하고 단도직입 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늦어서 미안해 얘들아. 혹시 아는 친구들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신 선생님이 어제 저녁 교통사고를 당하셨단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어깨랑 다리를 다치셔서 당분간은 나오시지 못할 거야.”
교실이 술렁인다. 하준은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 찬 교실이 처음으로 학교다워졌다고 생각했다.
“자자. 금방 나으실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너희들은 공부에 전념해라. 돌아와서 쪽지시험에 평균 이하인 녀석들은 보충을 시킬 거니까.-라는 선생님의 전언도 있었으니까. 알았지?”
아마도 전언은 사고를 당하신 선생님의 성대모사였던 모양이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웃음바다가 됨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은 학생 중 한 명에게 다가가 몇 명을 뽑아서 대표로 병문안 갈 사람을 결정해서 알려달라는 전달사항을 전했는데 아마도 그 아이가 반장인 것 같았다.
덕분에 뭔가 얼떨결에 떠밀려 교실에 들어온 하준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 버렸다.
담임선생님의 교통사고 사건 뒤에 소개되는 전학생. 이보다 초라한 등장이 있을까 싶었지만-
“아! 내일 부터 나랑 새로 오실 선생님이 임시 담임이 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새로 오신다는 선생님의 이야기까지 더해 정하준은 관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뭐 차라리 잘된 건가.’
계획대로라면 둘도 없는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외로워지는 것 같았다.
“선생님!”
그 때 소란의 사이를 착 하고 흩어 놓는 듯한 야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 목소리는 하준이 바라는 조용한 1년을 지우는 소리이기도 했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듯 그녀가 손가락을 움직인다.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지만 이번에는 또 한명의 그녀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같은 얼굴에 다른 표정.
한 명은 소녀면서 소년이고 다른 한 명은 소녀이면서 여인이었다.
다른 분위기를 풍기지만 두 명이 쌍둥이 라는 사실은 부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저렇게 두 명이 함께 앉아있으니 존재감마저 두 배가 된다.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 할 따름이었다.
    
Crim   2013-02-18 10:04:55
호올 쌍둥이..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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